어쩔수없이 엄마 그리고 아빠

_숨이 넘어가는 내가 없는 일상을 이어가면서 문득

by 부암 마들렌

너희 앙증맞은 팬티와 하루에 3벌씩 벗어내는

옷을 세탁할 시간은 있어도, 엄마의 3벌도 안되는 땀에 젖은 옷을 빨 여유는 없었다.


너희가 비염으로 기침하고 감기로 병원을 가서 약을 받고 끼니마다 챙겨 먹이면서 경과를 지켜볼 시간은 있어도, 열이나고 온몸이 아파서 새벽마다 몸서리 치다가 깰 지언정 엄마의 입에 약을 넣을 여유는 없었다.


너희가 먼 곳에 견학을 다녀와서 몸이 피곤하고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플때 일찍 밥을 지어주고 자기전 다리를 주물러 근육을 풀어 줄 마음은 생겨도, 8개월 된 무거운 몸으로 부엌에서 의자 하나를 갖다놓고 앉아서 밥하고 손을 뻗어 설거지를 할 지언정 내 뭉친 배와 저린 다리를 풀어줄 여유는 없어서 매일 밤 아픈 몸으로 잠든다.


첫째가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 학교 안가는

주말에는 산오르는 모임에 데려다 주려고

일찍 일어나 좋아하는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싸고 냄새에 아직 예민한 임산부 아내를 위해 설거지까지 해놓을 시간은 뺄 수 있지만, 아빠는 오후 3시가 넘어서도 대기하느라 내 끼니를 따로 챙겨먹으러 가거나, 편하게 앉아서 제대로 쉴 여유는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감기 걸린 둘째는 나가지 못한 채 아빠만 기다리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버선발로 뛰어나와 손잡고 마트에 가자, 문구점에 가자, 문구점에서 사온 만들기 하자. 아빠는 함께 따라 가주고 놀아줄 시간은 너희에게 줄 수 있어도,

땀이 범벅이 돼 샤워 한번 시원하게 하고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한잔 꺼내먹을 여유는 없었다


밤이 되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몰려와 달콤한 목소리로 맛깔나게 잘 읽어주는 아빠

자기전 딱 한권만 읽어주세요. 한번만 더 읽고 싶어요! 뛰어가서 책 두권 세권 더 가져와 자꾸만 읽고 또 읽어주는 무한의 기회는 너희에게 줄 수 있어도, 퇴근후 끊어 놓은 아파트 심야 헬스장에 갈 시간은 밤 9시가 되어도 없었다.


어쩌다가 어린 학생에서 우연히 어른이 되어, 휩쓸려 일하다 보니, 마음에 있던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귀여운 자식들을 낳고 함께 하게 되었지만 ... 나 없는 이 곳, 매일의 이 곳, 엄마아빠라고 부르는 이 곳에서 아직도 제대로된 뜻도 모르는 역할을 가지고 부모라 명확히 불리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맞을까' 하는

부끄러운 물음표를 매일 밤 곱씹은 채...


- 부암 마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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