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need to talk about Kevin
스포주의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때 당시 집을 나와있었고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케빈에 이입한 건지 뭔지 여하튼 보면서 많이 울었다. 그리고 거의 10년이 지나 본가로 다시 돌아와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울지 않았다. 사실 울만한 내용의 영화는 아니니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현재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주인공 에바의 머리길이뿐이다. 친절한 내용도 아니지만 설명 또한 친절하지 않은 영화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는 케빈에게 물어본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말이다. 케빈은 그 이유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케빈의 유일한 욕구가 충족됐다고 느꼈다. 항상 엄마가 자신에 대해 관심을 주기 바랐던 케빈이 에바의 관심을 받는다. 살인을 저지른 자신을 살인자취급하거나 다그치는 게 아닌 이유를 물어보는 게 케빈이 진정으로 원했던 거 아닐까.
에바가 케빈을 끌어안고 교도소 면회 후 나오는 장면에서 exit이라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환하게 열린 문으로 나간다. 근데 난 좀 이상하게 그 열린 문 뒤에 바로 앞이 막힌 벽돌벽이 보였다. 생각해 보면 교도소 구조 상 없앨 수 없는 벽이었을 수도 있고 촬영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벽일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이상하게 그 벽이 에바의 미래 같았다.
아무리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대량학살을 한 살인자 아들을 둔 엄마로서의 삶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그 아들이 사랑했던 남편과 딸을 죽였다는 사실, 기억 모두 벗어날 수 없다. 살면서 햇볕이 드는 날도 많지만 그럴 때마다 끔찍한 기억이 에바를 붙잡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친다 해도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물론 영화는 벽도 희미해지며 빛만 환하게 남으며 끝난다.
20대 초반의 나는 모자관계에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 당시 내 상황이 그렇기도 했다. 엄마의 영향이 아이를 어떻게 만드냐에 집중해서 봤다. 에바의 상황, 케빈의 기질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에바가 케빈을 집어던지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30이 넘은 후 다시 본 이 영화에서 에바에게 이입하며 보게 됐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수도 없는 감정 폭력을 당하는 것도 눈에 들어왔지만 모든 기억을 안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에바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 또한 지금의 내 상황에 이입해서 그럴 것이다. 영화에서 현재 모습으로 돌아오는 내내 에바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현실을 살려고 해도 케빈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에바를 때리거나, 그녀가 마트에서 난 계란을 다 깨 놓는 등 에바는 과거의 영향을 받는다. 에바는 과거의 기억이 매 순간 떠오르고 술을 마시고 약을 먹으며 버틴다. 나는 술과 약으로 버티고 있지는 않지만 과거의 망령이 따라붙는 에바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도 공감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도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더 몇 년 전에는 야식, 약, 잠으로만 하루하루를 보냈다. 케빈에 대하여를 보며 항상 나오는 케빈은 괴물로 태어났는가 아님 길러졌는가, 에바의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의 폭력등에 관한 질문이 있다. 근데 자기 상황에 맞춰 봐서 그런지 나는 그저 영화 속에서 앞으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에바가 너무나도 힘들어 보였다.
뒤이어 나올 멘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도 다뤄지겠지만 사람에게는 항상 감당 가능한 고통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치면 온갖 세상의 강력 범죄 피해자들 유가족들은 슈퍼맨이겠는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도 너무 나도 많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옛날에 아팠을 때 많이 하던 생각이다.
살아있어야만 좋은 날이 온다. 그 살아있는 동안 좋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