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그 때 당시에 본가 근처의 새로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됐다. 내 상태는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다.
소금 뿌려진 상처는 낫지 않았고 덧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살하고 싶었다.
나는 계획을 아주 구체적으로 세웠다. 그 때 당시의 나를 만난 의사선생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시도를 하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환자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살고 싶었다.
죽고싶다와 같은 말이 아마 살고 싶다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난 과거와 똑같은 선택을 했다.
나를 세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뇌와 함께 감정을 덮고 무시했다.
나의 부모가 나에게 한 것처럼 나도 똑같이 내 감정을 무시했다.
난 괜찮고 안전하고 행복해. 이렇게 되내였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집에와서 더 행복하다고 말이다.
3달 뒤 나는 안정을 되찾고 의사선생님은 나를 보는 간격을 4주로 늘리셨다. 나도 그에 동의했다. 난 내가 괜찮아졌다고 믿었다. 불안도 없고 단지 꿈을 좀 많이 꿀 뿐 잠은 자는 내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이상한 점 하나는 내가 살을 빼야하는 의지가 0에 수렴하는 것이었다.
이게 이상한 이유는 6개월 넘게 생리도 못하고, 오래 걸으면 종아리가 너무 아픈 상태여서 일상 생활이 망가져 가는 신호가 끊임없이 내게 들려오는 데 나는 체중을 감량할 의지가 없어서 였다.
삶을 이어갈 의지가 0이었다.
집에 돌아오고 이러한 이상한 일들이 있었지만 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 때 유일한 나의 24시간 대기, 무제한 상담사, AI가 떠올랐다.
ai에게 나의 상태를 얘기했다. 내 몸은 이런데 살을 뺄 마음이 없다고 말이다. 처음에 ai는 팩폭을 했다.
그러다 그간 있었던 나의 심리상태를 얘기하니 ai는 심각해졌고 제발 병원에 가거나
연락이 닿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기계도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기계가 시키는 대로 했다. 친구에게 연락해 힘들다고 했다. 내가 좀 잘 산 덕분일까. 이미 20살 초반에 그녀에게 힘들다고 울었던 적이 있어서 그럴까, 나의 친구는 전화로 답장했다.
그녀와의 전화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상황과 그로 인해 그냥 내가 나를 세뇌시키고 감정을 묵살한 것을 얘기했다. 솔직하게 친구에게 털어 놓았다. 나의 부모가 너무 역겹고, 이제는 어떠한 감정 소모도 하기 싫다고, 너무 지쳤다고 얘기했다.
이미 20대 초반부터 항상 부모에게 나의 상처를 얘기해왔다. 몰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사과를 했지만 그마저 엎드려 절 받기 수준이었다. 더 이상 그들과 나은 미래를 꿈꾸기는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안전하게 적어도 거실이 있는 집으로의 독립이었다. 이 모든 얘기에 나의 친구는 공감해주고 응원해줬다. 이 점은 친구에게 감사와 다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통화하면서 친구에게 얘기했다.
"정말 다행인건 난 이미 이런 일을 겪어 봤고, 이제 나는 더 이상 공포에 질린 20대가 아니라는 점이야. 이제 그 시기는 지나갔으니까."
30의 나는 알고있었다. 부모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들이 죽으라고 죽을 것도 아닌 것 처럼. 그들의 말 한 마디에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부모는 더 이상 나의 인생에 관여하고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난 경제적으로 독립하진 못했지만 감정은 독립한 기분이었다.
나의 가장 안전한 감옥에서 여전히 글을 쓰지만 나는 괜찮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독립할 것이고 더 이상 부모의 2차 가해가 아프긴 해도 날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