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케팅은 어려워

by 버블림

방학은 곧 기회


내가 미생에 합류한 2024년 6월 말은 유학생들에겐 방학시즌이다. 보통 5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여름방학을 갖는데, 대부분은 한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꽤 많은 학생들이 불편한 기숙사에서 탈출하고 새로운 거처를 찾고자 하는 이사 시즌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미생에게는 서비스를 알리고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합류 초반엔 서비스의 고도화를 위한 개선과 신규 기능 개선보다는 마케팅이나 전략기획 회의에 훨씬 많이 참여하고 관련한 일을 했다. 마침 개발팀이 다른 외주 작업을 맡아서 바로 업데이트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의 서비스기획보다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사이먼도 나도 목표를 뒀다. 아직 초창기이기에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면서도 당장의 매출도 놓칠 수 없었던 스타트업의 딜레마다.


또 마케팅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미생 세일즈팀의 가장 큰 문의 창구이자 미국 동부 최대 한인 커뮤니티인 헤이코리안(Heykorean)에서 우리의 계정을 다 정지시킨 것이다! 페이스북의 Marketplace나 StreetEasy 같은 다른 플랫폼들에도 광고를 많이 올렸고 문의도 많이 왔지만, 아무래도 한국인 유학생들이 선호할 만한 '안전하고 럭셔리한' 가성비 매물을 주로 중개하던 우리 입장에선 효율이 떨어졌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페이스북에 있는 이름 모를 미국인들보다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구하는 게 훨씬 맘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헤이코리안은 미생이 유명해지고 충분한 유저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꼭 필요한 홍보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명확한 사유도 알려주지 않고 세일즈 팀원들이 만드는 계정들이 차단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만 쏙쏙 골라서 차단했던 건지 정말 미스터리가 따로 없다. 사이먼이 문의를 하고 사무실까지 찾아가도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나중에 아예 우리랑 상관없는 브로커 분의 계정도 자주 막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가장 큰(사실상 유일한) 비즈니스 모델이 막힌 초유의 비상사태였다. 결국 자체적으로 미생이라는 중개 서비스를 홍보하고 어플로부터 문의를 끌어와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마케팅은 어려워


현업에서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는 내게 마케팅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내가 직접 고객들에게 프로덕트를 홍보해야 하고 심지어 그 프로덕트의 퀄리티가 스스로 만족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홍보를 하려니 사이먼도 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전에 사이먼 혼자서 시도해 본 인스타그램은 사이먼 스스로도 별로라고 인정했었고, 둘 다 콘텐츠 제작에는 감각이 없었다.


사이먼은 경영학과를 나오고 MBA까지 수료한 비즈니스맨이고 나도 나름 경영전략학회까지 한 사람인데, "나는 전공이 마케팅인데 아직도 마케팅을 모르겠어."라고 말하면 나는 "저도 학회에서 마케팅 전략 회의를 그렇게 했는데도 잘 모르겠어요."로 답했다. 우리의 오만함을 반성하고 마케터들을 리스펙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반성은 반성일 뿐. 우리는 어쨌든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어플로의 유입을 늘려야 했고, 다양한 방식을 고안했다. 미생 서비스에는 사이먼이 굉장히 추진하고 싶어 했던 미생이 직접 거주자들에게 빌딩의 리뷰를 받고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이걸 활용해 어플을 다운받고 본인이 살고 있는 건물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면 리워드를 주는 방식의 마케팅이 가장 처음 나온 아이디어였다. 다만 나는 이 방식에 조금 회의적이었는데, 우선 어플이 그렇게까지 예쁘게 나오지 않았던 상태였고, 이전에 인턴을 했던 스타트업에서도 똑같이 리뷰 작성과 리워드에 대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을 보며 억지로 늘린 리뷰가 유저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음을 경험했어서 그렇다. (그 서비스는 망했다.)


당시 우리 손님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건 뉴욕대의 유학생들이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이들은 (많은 뉴욕의 유학생들이 그렇지만) 렌트에 투자할 수 있는 버젯이 다른 국가의 유학생들이나 직장인들에 비해 넉넉한 편이다. 한 달 렌트가 곧 중개비인 이 바닥에서 버젯이 넉넉한 클라이언트는 소중한 고객일 뿐만 아니라 선택의 폭이 넓어 매물을 찾아주는 입장에서도 훨씬 편하다. 또한 우리가 자주 광고를 올리고 학생들이 들어가기에 절차상 간편한 건물들과도 지하철로 쉽게 통근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뉴욕대의 기숙사가 터무니없는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기숙사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따라서 세일즈팀도 일부러 뉴욕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거리와 환경의 매물을 자주 올리곤 했다.


그래서 이 뉴욕대로부터 고객을 직접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과 공지방에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제휴 안과의 스마일라식 홍보글이 떠올랐다. 나는 즉시 사이먼에게 우리도 뉴욕대의 한인학생회와 파트너십을 맺자고 제안했고, 본인도 중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인학생회 회장까지 역임했던 경험이 있는 사이먼은 즉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학생회장과 미팅을 진행하고 우리의 파트너 겸 어머니 회사라고 볼 수 있는 New York Moves의 지원을 받아 1년 5000불의 스폰서십을 맺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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