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뉴욕살이 시작

그것도 회사 대표의 집에서

by 버블림

스파이더맨 동네에서 뉴욕의 밤섬까지


24년 6월 말, 필리의 기숙사에서 방을 빼고 이사를 오면서 뉴욕살이와 함께 인턴으로서의 회사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첫 한 달은 스파이더맨의 집이 있는 퀸즈의 Astoria에서 지냈다. 사실 아스토리아는 스파이더맨의 집과는 거리가 좀 멀지만.. 어쨌든 뭐 같은 행정구역이다. 서울로 따지면 같은 관악에 사는 셈.


이곳은 나에게 오퍼를 준 회사 대표 사이먼(앞으로 자주 등장할 예정)이 살던 집이다. 사이먼이 이 집 계약기간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잠깐 방이 비었고, 내가 여기 들어간 것. 원래는 나도 사이먼이 이사한 집에 같이 살 예정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좋은 아파트에서 지내라고 배려해준 덕분에 위 배경사진처럼 맨해튼과 이스트 강이 한 눈에 보이는 뷰를 보며 살 수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침실에 사이먼이 서블렛, 즉 세를 내어준 인도인 룸메이트가 있었고 나는 거실에 커튼을 쳐서 임시로 만든 방인 flex room에 살았다. 이 flexing은 살인적인 월세의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룸메이트를 구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이다.


IMG_4132 2.JPG 처음 이사올 땐 이렇게 생겼었다. 솔직히 창고에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너무 좋아서 놀랐다.


그리고 이 집의 계약이 끝나면서 나는 사이먼과 그의 중국인 룸메 데빈이 사는 루즈벨트 아일랜드(Roosevelt Island)의 아파트로 다시 이사를 했다. 루즈벨트 아일랜드는(우리끼리는 줄여서 루섬이라고 불렀다) 굳이 따지자면 뉴욕의 밤섬같은 곳으로, 굉장히 길고 얇아서 섬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데 걸어서 5분도 안걸린다. 이 글의 커버 사진에 보이는 섬이 바로 루즈벨트 아일랜드이다.


스크린샷 2025-06-03 오후 5.57.59.png 가운데 노란 별이 루섬 집이고, 우측 상단 별이 처음에 잠깐 살았던 아스토리아 아파트다.


지도상으로는 이렇게 생겼다. 섬이지만 지하철과 버스, 심지어 트램과 공짜 순환셔틀도 다니고 맨해튼에 비해서 렌트가 정말 싸서 사람들이 꽤나 많이 산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가족들도 몇 번 마주쳤고, 우리 서비스의 이용자들에게도 많이들 소개시켜주는 좋은 곳이다. 특히 섬 내부에는 홈리스가 거의 없고 새벽에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 여기 살면서 나중에 뉴욕에 다시 오게 된다면 무조건 루섬에 살 거라고 수없이 다짐할 정도로 좋았는데, 루섬 자랑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해보겠다.


나의 두 번째 방. 원래는 living room인데 왼쪽처럼 가벽을 세워서 분리해뒀고, 오른쪽이 내부 사진이다. 이런 곳을 흔쾌히 제공해준 사이먼에게 무한한 감사를..


루섬의 두 번째 집에서도 임시로 친 가벽과 커튼 뒤 flex room에서 살았다. 침대도 있고 방도 훨씬 넓어서 불편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부동산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서 이제 대충 건물 컨디션과 방 크기만 봐도 대충 가격이 나오는데, 이 정도 방을 맨해튼에서 구하려면 최소 한 달 1700불은 든다. 이백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니 나는 사실상 한국 기준 최저임금은 받았던 거다. 물론 루즈벨트는 맨해튼보다 훨씬 싸서 실제 가격을 따지면 저 정도는 아니다. 또 아스토리아에서도 가격에 비해 굉장히 좋은 집에서 살았는데, 사이먼이 이렇게 집을 잘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성비 좋은 매물을 찾아서 광고를 하고 손님들에게 중개를 하는 일이 바로 우리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개수수료가 우리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또 정리할 예정이다.


내가 어디 살았는지는 뭐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본격적인 일 얘기를 하기 전에 뉴욕에서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거주와 집값에 대해 내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눠보고 싶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상사랑 같이 사는게 불편하지 않겠냐고 걱정을 많이 해줬는데, 그런걸 따질 입장도 아니었거니와 사이먼이 워낙 쿨하고 웃긴 사람이라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뉴욕에 살아보겠어~" 싶다.


New York Moves


이제 일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크게 두 팀에 소속되어 일을 했다. 우선 서류상으로 소속된 New York Moves는 뉴욕 Flatiron에 있는 부동산회사인데, 간단하게 말해 그냥 부동산 중개사무소이다. 이 회사에 소속된 브로커(중개인)들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StreetEasy 등 여러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면 그걸 보고 집을 구하는 손님들로부터 연락이 오는데, 이 손님들을 응대해서 건물을 보여주고 입주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아직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을 잔뜩 고용해서 손님을 응대시키는 전형적인 요즘 한국 중개사무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 내가 딱 그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Unlicensed Real Estate Salespers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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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스 회사가 있는 건물의 우편함과 엘리베이터. 늘 관광지만 다니다 이걸 보니 내가 정말 뉴욕에 살면서 일을 하는게 실감났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바로 말도 안 되는 집값과 그로 인한 중개수수료다. 한국의 원룸과 같은 개념인 Studio를 맨해튼에서 구하려면 최소 2500불부터 시작하고, 조금만 신축이나 럭셔리한 건물로 보면 3000불은 기본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중개수수료 가격이 바로 이 한 달 월세와 같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복비가 거래 유형과 금액에 따라 정해져있듯 뉴욕에서는 중개수수료(Broker Fee)로 한 달 월세만큼을 지불하는게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러니 내가 만약 한 달 3000불짜리 스튜디오에 손님을 데려와 계약을 체결하면 건물 또는 손님측에서 우리에게 3000불을 지불하는 것이다! 말이 3000불이지 월세 6000불이 넘는 투룸 아파트 딜을 성공하면 한화로 대략 800만원을 받는 셈이다. 물론 이걸 전부 다 직원이 가져가는 것은 아니고 회사와 일정 부분을 나누고, 룸메이트가 있어 렌트를 나누는 경우 내 클라이언트가 지불하는 렌트비가 곧 나의 보수이다.


그리고 이 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직적으로 클라이언트를 공유하여 서로 예산, 선호하는 방, 성별 등 적합한 룸메이트를 매칭시켜준다는 점이다. 아무리 뉴욕에 부자가 많더라도 매달 3~4000불을 혼자 월세로 감당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라리 거실 1개, 침실 1개가 있는 4500불짜리 아파트에 2300/2200불로 월세를 나눠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무브스는 바로 그 지점을 노렸다. 세일즈 에이전트들은 슬랙에 본인과 연락을 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정보를 공유하고, 매주 오프라인 회의를 통해 자신이 찾아낸 가성비 좋은 매물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A라는 빌딩의 00호가 아주 좋은 가격에 나왔는데, 2300불, 2200불로 나눠서 들어갈 수 있고 나에게 2300불 침실에 들어가려는 손님이 있어. 혹시 이 지역의 플렉스룸을 찾고 있는 손님이 있으면 내게 말해줘" 하는 식이다.


솔직히 이 모습과 대화내용을 그대로 한국식으로 옮기면 너무 다단계같은데, 뭐 이상한 일도 아닐뿐더러 뉴욕을 잘 알고 영업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력 대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고액알바라서 nyu나 근처 대학에 다니면서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외에도 투어 방식이나 전세 유무 등 설명할 것들이 많지만 여기선 생략하고, 아무튼 나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회사의 UX/UI Design Assistant 직무로 Job Offer Letter를 받았다. 원래는 세일즈, 즉 중개 일도 부업 느낌으로 하면서 New York Moves의 웹사이트 디자인 개선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웹사이트는 손보지 못하고 세일즈 일만 했었는데, 남은 시간에는 전부 미생에 소속되어 일해서 그렇다. 풀고 싶은 썰과 팁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세일즈 얘기는 나중에 제대로 준비해서 돌아오겠다.


미생(Misaeng)


다음은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한 팀이자 서비스인 미생(Misaeng)이다. 미국 생활의 모든 부분을 케어해준다는 의미에서 미생..일 거다 아마도. 내가 지은건 아니다. 내가 처음에 일 시작하면서 사이먼한테 내가 느낀 개선점에 이름도 포함이었는데, 다 떠나서 미생이라고 치면 드라마 미생만 떠서.. 하지만 이름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이 미생이라는 서비스는 뉴욕 무브스에서 제공하는 중개 서비스를 그대로 어플과 웹사이트에 옮겨서 한국인과 중국인 유학생들을 메인 타겟으로 운영하는 서비스이다. 사이먼은 뉴욕에 오기 전 보스턴에서도 대학원을 다니며 부동산 세일즈 일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학생들이 기숙사가 훨씬 비싸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막막함 때문에 개인 아파트를 구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한인 커뮤니티에 안전하고 실력 있는 한인 브로커는 많다. 하지만 룸메이트 매칭까지 해주는 브로커는 많지 않는데, 혼자서 룸메이트까지 찾을 수 있는 클라이언트 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고 최대한 많은 리드(문의)를 받아야 매칭을 시켜줄까 말까이다.


그래서 사이먼은 매물 탐색, 룸메이트 매칭, 서류작업 등 집을 구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한 어플 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 처음부터 매물을 탐색할 때 룸메이트와 함께 살 경우의 가격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어플을 통해 문의하면 미생 세일즈팀으로 연결이 되어 상담을 진행한다. 따라서 서비스의 만듦새 자체는 직방, 다방같은 한국의 부동산 플랫폼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미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직접 중개할 수 있는) 매물을 보여주고 손님이나 건물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광고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과 차이를 지닌다.


처음에는 웹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D2C 영업에 의존하는 BM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뉴욕 부동산 시장의 높은 가격대로 인해 계약만 꾸준히 이뤄지면 충분히 수익이 보장되었고, 또 미국에서는 프랜차이즈나 대형 사업이 아니어도 웹사이트나 어플을 만들고 웹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이해가 안되진 않았다. 그리고 사이먼 스스로 서비스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경험과 확신을 믿고 따라보기로 했다.


IMG_4766.JPG 미생의 출근장소인 32nd Street 위워크 오피스. 한인타운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다.

다음은 같이 일한 사람들. 팀 이름도 미생이다. 크게 한국에 풀스택 개발자 2명이 소속된 개발팀과 뉴욕에 있는 기획팀, 세일즈팀 이렇게 세 팀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프리랜서 마케터와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기도 했고, 사이먼은 사실상 세 팀 모두에 소속되어 일을 했다. 나 역시 기획팀과 세일즈팀 모두에 소속되었고, 개발 회의에도 참여했다.


내가 합류했을 24년 6월 말에는 mvp수준의 어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가 만들어진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이먼과 공동창업을 한 다른 대표님 한 분이 개인사정으로 한국에 들어가있어야 했고, 이 분이 미국에 와야 브로커리지(중개사무소)로서의 사업자 등록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금 정체되어 있었다. 내가 미생이 아닌 New York Moves에 고용된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먼은 어떻게든 완성된 형태의 프로덕트라도 만들어놓고자 혼자서 개발, 기획, 디자인을 전부 도맡아 했고, 이외에도 별개로 세일즈까지 하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같이 일하고, 고민할 사람이 필요하던 차에 마침 오픈카톡방에서 내가 올린 구직 글을 보게 된 것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회사 대표와 인턴으로 만나 6개월동안 같이 살며 뚝딱뚝딱 일을 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스타트업답게 별 일을 다 했다. 기본은 UX/UI 기획이었지만 마케팅, 세일즈, 전략기획, 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해봤다. 서론이 길었는데, 다음 글부터는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점을 느꼈는지 조금씩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