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욕에 일자리를 구해보자

by 버블림

왜 구했나?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필리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외롭고 한국이 그리울 때도 많았다. 하루에 말을 한 마디도 안한 날도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아무도 날 건들지 않고, 내가 눈치 볼 사람이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썩 괜찮았다. 음식도 곧잘 해먹어서 한식이 그립지도 않았고, 악취섞인 수증기가 올라오는 하수구 위에 누워 몸을 녹이는 홈리스들도 꽤나 익숙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취업이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에 당장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기도 했다.


또 동경심이 들 정도로 미국이 좋아졌다. 사실 나는 해외로 나가 더 큰 세상을 경험한다느니, 큰 물에서 논다느니 하는 말들은 다 허세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졸업 전에 미국에 살아보고 싶어서 간 교환이고 수업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보고 나니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되었다. 드렉셀은 미국 내 학교의 레벨로만 따지면 서울대에 한참 못미치는 학교이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서울대 학생들이 정말 몇 배는 더 똑똑하고 수준이 높다. 그런데 교육 수준과 학생 복지가 정말 차원이 달랐다! 서울대가 국립이기도 하고 또 워낙 방임주의라서 더 비교되는 것 같다. 하지만 드렉셀은 아예 학생들의 학업과 취업을 서포트해주는 일을 전담으로 하는 Academic Advisor들이 각 전공마다 몇 명씩 배치되어 있을 정도이고, 전반적인 수업의 퀄리티도 더 좋았다. 특히 fxxx, sxxx 등 욕을 아무렇지 않게 쓰며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교수님들이 신기했다. 확실히 미국은 인종차별만 아니면 욕에 대한 허용 정도가 높다.


심지어는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수업을 듣고, 그와중에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문화도 멋져 보였다. 어떤 사람은 20명도 안되는 소규모 '토론' 수업에서 교수님 바로 앞자리에서 헤드셋을 끼고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교수님은 아무 말씀 안하셨다. 또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점인데, 학교의 체육시설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헬스장, 탁구장, 스쿼시, 수영, 농구코트 모두 학생이라면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농구공도 빌려주는 덕분에 혼자서라도 자주 공을 던질 수 있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갖고 지원해주는 것 같았고, 이런게 진정한 대학생활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국의 생활과 문화에 점점 스며들었다.


주저리주저리 혀가 긴데, 쉽게 말하면 미국병에 걸렸던 것.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요즘 릴스나 쇼츠에 "외국 살다가 온 친구 특" 하면서 허세부리는 걸 비꼬는 영상이 많이 뜨는데 솔직히 좀 뜨끔한다. 어쨌든 이렇게 미국병에 걸렸으니 이런 선진환경에서 일까지 하고 한국에 돌아간다면 뭐가 되었든 좀 앞서나갈 수 있다는 편견섞인 기대가 생긴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능은 한 걸까?


사실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당연히 절차상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방법을 찾아보진 않았다. 그러던 도중 5월 초쯤 같은 시기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먼저 종강한 과 동기와 뉴욕에서 만났다. 신나게 빈티지샵 투어를 마치고 타임스퀘어의 한 펍에서 각자의 교환 썰을 풀다가 내가 내친김에 일까지 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 친구가 마침 자기 학교에도 일을 구해서 연장한 교환학생들이 꽤 있다고 알려줬다. 웃긴 건 대부분은 무급으로 구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국인 대학원생, 연구원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면 개처럼 일하겠다고 구직 글을 올려 일을 구했다더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서울대생을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서 다들 꽤나 쉽게 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알아보니, 전공과 관련한 일을 구한 후 Academic Training Program에 신청해서 승인이 되면 정말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내 비자를 연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자 만료 한 달여를 남기고 일자리 구하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또 이왕 할거라면 세계의 중심인 뉴욕에서 하고 싶어서 뉴욕에 일자리를 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나 궁금해할 누군가를 위한 Academic Training Program 설명

원래 미국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알기로 간단한 아르바이트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정해진 교환 기간이 끝나면 비자가 만료되고 한 달 내로 미국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 나처럼 일을 해보고 싶은 교환학생들을 위한 Academic Trainigng Program이 있는데, 이걸 통해서 교환학생 프로그램 자체를 연장할 수 있다. 최대로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은 원래 기간만큼. 즉 5개월짜리 프로그램이었으면 최대 5개월만큼 더 일을 하고 갈 수 있다.

본인의 전공(파견대학 기준)에 맞는 일을 구한 후, 기업으로부터 받은 Job Offer Letter를 제출하고 프로그램 신청이 승인되면 끝이다. 중간에 추천서 등 이런저런 서류 작업이 있지만 어쨌든 전공과 관련한 Job Offer Letter를 받는 것이 핵심이고, 너무 이상한 일만 아니면 대체로 승인되는 것으로 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보자


일을 구하면서 느낀 점인데, 미국도 한국만큼이나 취업이 어렵다. 어쩌면 전세계 인재들이 몰리는 만큼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미국 대학생들은 일찍부터 취업과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인맥사회답게 링크드인 프로필을 열심히 관리하고, 네트워킹 행사나 취업박람회가 열리면 꼭 참여해서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든 어필하려고 한다. 현지 대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해도 일을 구할까 말까인데, 아직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는 교환학생이 한 달만에 뉴욕에서 인턴을 구한다니.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렇지만 별 수 있나! 나는 계란을 던져보기로 했다.


링크드인 프로필을 만들고, 옆학교 유펜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의 레쥬메를 참고하여 레쥬메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미국의 대학연계 구인구직 플랫폼 Handshake에도 내 프로필을 만들고 레쥬메를 올렸다. 서울대 경력개발센터가 보내는 수많은 이메일은 다 무시했던 내가 드렉셀의 커리어센터에 줌 콜을 신청해 구직상담과 레쥬메 첨삭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지원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반응이나 답장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커리어센터 직원의 조언대로 뉴욕의 UX/UI 관련 모든 연구기관에 메일을 돌리려던 차에, 지인이 한국인 카톡방에 글을 올려 인턴을 구했다는 동기의 말이 생각났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뉴욕' 딱 두 글자를 검색해봤다. 여행정보, 동행 모집방 아래로 <뉴욕에서 스타트업>, <뉴욕/뉴저지 IT 모임>이라는 두 채팅방이 보였다!! 마지막 남은 기회다 싶어서 나는 결국 세상 구질구질한 구직 글을 써서 올렸다.


81C63D21-25AD-4A97-A9D7-876C553D363B.JPG 다신 못할 짓인데, 이땐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러겠어 싶은 마음이었다. 절박하다는 말은 좀 뺄걸..


정말 감사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분에게 연락이 왔다. 뉴욕에서 부동산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는 사람, 한국에서 육아 관련 어플을 런칭해 자리잡은 후 보스턴에서 같은 서비스를 미국 버전으로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 뉴저지에서 디자인 에이전시를 하고 있는 사람까지. 모두와 전화, 메일을 주고받으며 얘길 나눴고 결국 가장 처음 연락을 줬던 분과 함께하게 됐는데, 무급이긴 하지만(애초에 유급은 바라지도 않았다) 자기가 지금 뉴욕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방 한 칸이 남아서 여기서 같이 지내며 일을 해보자는(!!)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주셨기 때문이다. 뉴욕의 말도 안되는 집값을 생각하면 사실상 월급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설령 일을 구하더라도 거주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직 미국에서의 사업자등록이 되기 전에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서, 나 역시 그분이 소속된 뉴욕의 부동산 중개 회사로 고용되어야 했다. 덕분에 한국인들과 일하면 미국에 남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했던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맨해튼 Flatiron에 있는 New York Moves라는 뉴욕의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UX/UI Design Assistant 직무로 Job Offer Letter를 받았고, 기숙사에서 짐을 뺀 날 뉴욕으로 이사를 가며 본격적인 뉴욕살이 및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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