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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Feb 17. 2022

말할 수 없는 비밀

양쌤의 픽 8 <곰씨의 의자> - 노인경/문학동네

  곰씨는 넓은 의자에 앉아 시집을 읽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평화로운 시간을 좋아한다. 어느 날 지친 모습으로 지나가던 탐험가 토끼에게 의자를 내주며 쉬게 해준다. 곰씨에게 모험담을 들려주던 탐험가 토끼는 슬픔에 빠진 무용가 토끼를 만나 위로해주다가 곰씨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한다.

  하지만 토끼 부부의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곰씨는 좋아하는 일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즐거워하는 토끼 가족 사이에서 곰씨는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곰씨는 아이들이 의자에 앉을 수 없게 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의자에 길게 누워도 보고,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의자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급기야 최후의 방법을 쓰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말도 안 돼! 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비를 맞고 곰씨는 쓰러진다. 토끼 가족의 간호에 정신을 차린 곰씨는 계속 울기만 한다. 토끼 가족은 이유도 모르면서 함께 울며 위로한다. 며칠 뒤 곰씨는 커다란 용기를 내어 토끼 가족에게 속마음을 말한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곰씨가 되고 싶었다. 누구든지 기꺼이 내 의자에 앉게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편을 들어주고 화나는 일은 같이 욕하고 좋은 일엔 함께 기뻐하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누가 그랬다. “너도 참 오지랖 넓다.”

  나는 오지랖이란 말에 관대하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그런 오지랖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세상을 향한 창문이 되고 마음이 시린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온풍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오지랖엔 필수 조건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감정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야 하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꼬박 2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가정의 아이에게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학교 숙제를 도왔다. 손을 다쳐 수술하면서 가르치는 일은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나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세 살 터울의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도 너무 보기 좋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조금만 더 내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들이면 가능한 것들이었기에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선의에 넘치게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고 보람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어려움이 끊이지 않았고 부부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들의 어려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점점 더 그들의 삶에 관여하게 되었다. 갈수록 마음에 부담이 늘어갔다. 서너 시간씩 학교 공부를 도와주고 하소연을 들어주다가 정작 내 아이들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신용카드도 없고 현금이 늘 넉넉하지도 않은 그들을 위해 최저가의 양질의 물건들을 구입해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모습도 함께 지켜봐야 했다.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괴감이 들거나 화가 나거나 우울할 때가 점점 많아졌다. 나는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들이 먼 시골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를 찾았다. 정말 그만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 더 상처일까?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하나 그냥 슬그머니 연락을 끊어야 하나. 수백 번 생각했지만 나는 끝내 곰씨처럼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냥 도망치는 쪽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는 건 없다. 나는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두 번 중의 한 번, 세 번 중의 한 번, 점점 뜸하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한 이유가 궁금도 하고 잘 살고 있는지 걱정도 됐지만 꾹 참았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만날 때 일곱 살이었던 첫째가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 아이들의 메신저를 들여다보며 전화를 걸어볼까 말까를 망설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믿어본다.    

  적당한 감정적 거리를 두지 못한 내 탓에 그들은 나에게 마음껏 기대어도 되는 줄 알았을 거다.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었는데 섣불리 흉내를 내었던 것 같다. 내가 산뜻하게 “NO”라고 말할 줄도 알았다면 지금도 서로를 응원하는 친구로 스스럼없이 연락을 주고받았으려나. 

  나는 아무래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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