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owa Jan 20. 2022

구부러진 나무가 좋다

양쌤의 픽 7  <씨앗 : 이창건 동시집> - 이창건/처음주니어

  친구들과 메신저에 시나 좋은 글귀를 올려 함께 필사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목요일은 내가 필사할 글을 올리는 날이다. 어떤 글이 좋을까 책장을 살피다가 오래전 수채화 그림이 예뻐서 샀던 이창건 작가의 동시집 「씨앗」을 펴보았다. 동시집이라지만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동시가 많다.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라고,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포스트잇이 몇 개 붙어있다. ‘저녁종’ ‘사랑스런 사람’ ‘새벽’ ‘골짜기’ ‘낙타’ 그리고 또 하나가 ‘구부러진 나무’ 다.     


구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이창건

     

나무가 구부러져 있다

나무가 위로만 자라서는 안 되지

과수원의 나무들을 보아라

아래로 구부러진 가지 가지 사이로

향기로운 얼굴들을 보여 주지 않느냐

나무가 곧게만 자라면 그늘이 없지

그러면 어찌 바람이 놀러 와 피리를 불며

새들이 날아와 재재거리겠니

지금 한 나무가

구부러져 있다


  곧고 굵게 자라는 나무를 감탄하며 볼 때가 있다. 그 나무처럼 꿋꿋이 한 우물을 열심히 파고 또 파는 사람, 줏대 있게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키는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어쩜 저렇게 지치지도 않을까. 어쩜 저렇게 변함이 없을까. 조금은 팔랑귀인 데다가 약간의 냄비근성까지 가진 나는 그런 사람들이 살짝 부러웠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한결같지 못함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싶다. 그 한결같지 못함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하고 일상의 활력이 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다양한 경험도 하게 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낯선 이에게 곁을 내어주고 힘들 땐 적당히 타협도 하고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기도 하며 구부러지고 수그러지고 꺾인다. 어떨 땐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내가 주었을 상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조율’이라는 말의 골치 아픔과 즐거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함께해서 더 기쁜 일을 생각한다. 모자람을 모자란다고 말하지 않게 된다. 자꾸 숨고 싶을 때도 용기를 내보게 된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가지가 옆 나무를 찾아가 새 이파리를 내보낸다. 이파리들이 손을 맞잡는다. 키 큰 나무가 내려다보고 키 작은 나무는 적당한 햇빛과 그늘 속에서 싱그럽게 마주 본다. 구부러진 가지와 가지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면 서로의 향기를 맡고 함께 따뜻하고 서늘하고 덥고 추운 사계를 맞이한다. 어우러진 나무들 곁으로 누가 찾아오든지 머물 곳이 되어주고 그들의 심술도 모른 척 넘어갈 줄도 아는, 구부러진 나무가 좋다.

<사랑스런 사람> <저녁종> <새벽>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혼자 서야 할 때가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