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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Nov 27. 2021

뭐 어쩌라고?

양쌤의 픽 1 <이파라파 냐무냐무> - 이지은/사계절

  해가 뜨면 함께 열매를 따러 가서 실컷 먹고 해가 지면 함께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마시멜롱들이 있었다. 이 평화로운 마시멜롱 마을에 어느 날 “이파라파 냐무냐무”라고 외치는 거대하고 시커먼 털숭숭이가 나타난다. 털숭숭이가 발 한쪽만 잘못 디뎌도 마시멜롱들의 집 정도는 순식간에 납작해질 것처럼 위협적인 모습이다. 마시멜롱들은 집 안에 숨어 털숭숭이가 외치는 말을 열심히 분석한다. 한 마시멜롱이 외친다. “우리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야!” 마시멜롱들은 꼬치에 줄줄이 꿰어져 모닥불 위에 올라가고 핫초코에 풍덩 빠져 털숭숭이의 입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대로 냠냠 먹힐 수 없어요!”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를 새총으로 쏘기도 하고, 잠들었을 때 꽁꽁 묶기도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때, 꼬마 마시멜롱이 말한다.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털숭숭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꼬마는 “이파라파 냐무냐무”를 계속 외치는 털숭숭이를 혼자 찾아가고, 마시멜롱들은 불화살을 날려 보낸다. 불 공격에도 끄떡없던 털숭숭이는 또 “이파라파 냐무냐무”를 크게 외치는데 털숭숭이의 입안에서 꼬마가 나타나 말한다.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해. 천천히 또박또박” 눈물을 뚝뚝 흘리며 털숭숭이가 또박또박 말한다. 

“이빨 아파 너무너무”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선입견과 그로 인한 소통의 어긋남에 관한 이야기다. 마시멜롱들은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외모에서 비롯된 의심으로 털숭숭이에게 잘못된 확신의 딱지를 붙였다. 그러고 나니 털숭숭이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 없었고 털숭숭이의 상황을 살필 이유도 없었다. 

  선입견을 가지고 성급하게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그다음부터 관계는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찰떡같이 말했는데도 개떡같이 알아듣고, 삐딱한 시선은 점점 더 그 기울기가 심해지며, 오해가 오해를 낳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서로가 아주 차갑게 마음의 거리를 늘려갈 때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중재자가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꼬마 마시멜롱처럼 말이다. 

  나는 꼬마 마시멜롱을 보며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이 벌거벗었음을 솔직하게 말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둘의 순수한 마음은 남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나 남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 없이 그 대상 자체를 바라보는 힘이 있다. 그냥 커다란 덩치와 뾰족한 발톱과 가늘고 길쭉한 눈을 가졌을 뿐인 털숭숭이로 바라보고, 비난받을까 봐 걱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어른이 되면서 너무 많이 알아버리고 너무 많이 조심하면서 잃어버리고 마는 힘을 계속 지킬 방법은 없을까.

  마시멜롱들의 모습은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외모로 남을 평가할 때가 많은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외모에 대한 선입견, 그로 인한 편견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마가 어떻고 눈매가 어떻고 코는 어떠며 입술과 턱은 어떤지, 남의 얼굴은 그만 뜯어보고 우리 얼굴부터 뜯어보며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파악해 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나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은 이런 거였다. 혼자 커서 자기밖에 모를 것 같다는 둥, 집안일을 못 하게 생겼다는 둥, 아무 걱정 근심 없이 편하게 산 사람 같다는 둥. 

  ‘아니, 형제 없이 자라면 다 이기적인가? 대가족 속에서 자라도 배려가 부족한 사람 많더구만.’ ‘도대체 집안일을 못 하게 생긴 건 어떻게 생긴 걸까?’ ‘내가 너무 많이 웃었구나. 걱정 근심 있을 때마다 분위기 축축 처지게 진상 한번 부려볼까?’ 

  이렇게 한 번씩 욱할 때가 있었다. 

  가장 나를 욱하게 했던 것은 ‘외동딸’에 대한 것이었다. 굳이 나에 대해 품었던 걱정을 말해 주고는 안 그래서 좋다는데, 칭찬이겠지만 때로 피곤했던 시간이 떠올라 약이 오르기도 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불리해졌을 때 심술궂게 ‘혼자 커서 그렇구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죄송해서라도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혼자 컸는데도’라는 말을 꼭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뒷짐 지고 있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엉덩이 무겁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때때로 얼마나 부지런한 척을 했는지 모른다. 잘못된 선입견이 파놓은 함정을 알면서도 퐁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런 시선에 별로 욱하지도 않고 그런 사람도 없지만, 혹시 누가 또 그런 말을 한다면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 ‘뭐 어쩌라고?’  


  선입견 때문에 기분 나쁘고 어이없고 손해 봤던 모든 이들이여! 반전을 노려보자. 나쁘지 않다. 하던 대로 하다 보면 반드시 그대들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고 그대들은 더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뒤늦게 그대들의 진가를 알아챈 사람들이 아주 징글징글하게 귀찮게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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