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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Nov 27. 2021

따지지 마, 나이 같은 거

양쌤의 픽 2 <방방이> - 이갑규/한림출판사

  진심으로 나잇값 안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파트 바자회에서 미니 바이킹을 발견했을 때, 놀이동산에서 회오리 감자 사 먹을 때, 한강 어린이 놀이터 짚라인이 너무 타고 싶을 때, 셀프 사진 스튜디오 앞을 지나갈 때, 어쩌다 20대들과 수다 떨 때, 애쉬 카키로 염색한 탐스러운 긴 머리를 보았을 때 그리고 기타 등등. 

  왜 재밌는 건 다 애들만 할 수 있게 해 놓은 걸까? 나이가 들어도 재밌는 건 재밌는 거고, 재밌던 게 막 시들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이와 호기심이 반비례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탈모 방지 샴푸 쓰는 주제에 탈색하고 염색하면 대머리 되려나? 세상엔 내가 못해 본 재밌는 게 왜 그렇게 많은지. 예전엔 혼났을 일이 요즘엔 별일도 아닌 그런 것들도 해 보고 싶은데 그러면 나이 먹고 주책이라고 그럴까?    


  하람이는 방방이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밖에서 기다리는 아빠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빠는 잠시 머뭇거리지만 금방 방방이에 푹 빠져든다. 아빠 때문에 마구 튕겨 오르고 나동그라지던 아이들은 방방이 밖으로 도망간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이 몰려와 아빠를 나무라며 방방이로 올라가는데 이내 다 함께 뛰기 시작한다. 치마가 부풀어 오르고, 불룩한 뱃살이 보이고, 감쪽같던 가발이 벗겨지도록 신나게 뛴다. “한껏 달아오른 어른들의 대화는 꽤나 길었다.”    


  그림책 『방방이』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트램펄린 ‘방방이’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뛰어노는 어른들의 모습을 담았다. 하늘 향한 두 팔이, 자유로운 두 다리가,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커다란 입이, 체면을 차려야 하는 어른으로서의 ‘나’는 완전히 내려놓은 모습이다. 저 밑바닥에 숨어 있던 아이의 모습을 소환해 신나게 뛰고 구르며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기지개를 켠다. 치켜 올라갔던 눈썹이 내려오고 사납던 입꼬리가 순해진다. 무겁게 깔려 있던 걱정 근심이, 말하지 못한 속상함이 방방 뛰면서 마음 밖으로 죄다 튀어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하람이는 어떻게 아빠를 부를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아빠는 방방이에서 뛰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자꾸 쳐다보았는지 모른다. 하람이는 아빠의 눈빛만 봐도 다 알 수 있는 예쁜 딸임에 틀림없다. 아빠는 하람이의 초대가 고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망설였을까. 나이 먹어서 애들 노는 데 방해나 한다고 수군거리지나 않을지 눈치가 보였을 거다. 주저하면서도 방방이에 올라선 아빠는 소심하게 뛰다가 어느새 방방이 위의 무법자, 덩치 큰 개구쟁이로 변하고 만다. 

 손가락질하던 어른들조차 하람이 아빠가 만들어낸 방방이와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고 급기야 그 리듬을 즐기게 된다. 어른들이 방방이에서 내려오길 기다리던 아이들이 다른 놀이를 시작하기까지 내려올 줄을 모른다. 방방이 위 여덟 명의 어른들은 분명 나이 따위는 잊어버린 것 같다. 하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잠깐의 귀여운 일탈을 한다고 해서 나잇값도 못 하는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나잇값이란 것을 해야 할 때가 있긴 하지만 나이가 자유로움을 뺏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먹음에 대해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어떤 땐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가 어려서 하지 못하는 일보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면 안 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 남에게 폐가 되지만 않는다면 나이먹음에 대한 편견 따윌랑은 꼭꼭 접어 넣어두고 가끔은 철없는 어른이 되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의 해맑은 표정과 순수했던 마음을 잠깐이라도 되찾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른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긍정의 힘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도 할 테고.


   ‘방방이’에서의 시간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몸 구석구석 채우고 마음이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야겠다 싶다. 그럼 어른의 마음을 품고도 아이의 웃음을 짓는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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