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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Nov 29. 2021

내 손을 잡아요

양쌤의 픽 3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  전미화/웅진주니어

  어느 날, 시끄럽게 현관 벨이 울린다. 문을 연 여자 앞에 낯선 공룡이 서 있다. “난 춤추는 공룡이오.” “무슨 일로 왔소?” “춤추러” “나는 당신이 우울하다는 소식을 들었소.” “난 생각이 많을 뿐이야. 우울 따윈 하지 않아.” 여자에게서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공룡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의 집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요란하게 춤을 춘다. 음악 소리에 도어 뷰어로 밖을 살펴보던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흥에 넘쳐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다 급기야 문을 열고 나가 공룡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춘다. “난 마이클이오.” “난 달보요.” “나와 함께 하지 않겠소?” 통성명을 나눈 공룡과 여자는 마이클과 달보 2인조 댄스팀이 되어 또 다른 우울한 이를 찾아 떠난다.    


  하! 이런 사람, 아니 이런 공룡 너무나 매력적이다. 주저리주저리 돌려 말하지도 않는다. 말로만 이래라 저래라 하지도 않는다. 뭐가 정답이라고 단정 짓지도 않는다. 핵심만 딱 말하고 그냥 함께 열렬히 춤을 춘다. ‘Just dance!’ 이거다! 백마디 말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마음에 걸어둔 빗장을 때려 부술 수 있는 방법.  

  열심히 팔다리를 휘저으며 춤추는 마이클과 달보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는데도 음악 소리와 신난 추임새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아 예~” “앗싸” 나도 그들 틈에 껴 함께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다.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꿀꿀한 기분도 단번에 바꿔줄 웃긴 그림책으로만 기억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보는 자신의 변화를 이끌어준 마이클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춤이 필요한 누군가를 함께 찾아간다. 마이클과 달보를 만나 바뀌게 된 이는 그들처럼 또 누군가를 찾아가며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혼자만 좋기 없기. 이 책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다. 


  결혼하며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연년생 두 아이를 낳아 키웠다. 남편은 아침 6시쯤 출근해서 밤 8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소위 말하는 ‘독박 육아’였지만 아이들이 예뻤고 힘들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책장을 보다가 대학교 때 공부하던 토익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틈틈이 토익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남편은 취직할 것도 아닌데 왜 토익 공부를 하는지 물었다. 나도 딱히 이렇다 할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니었다. 그냥 해야 할 것 같았다. 두어 번 토익시험도 치러 갔다. 남편은 길도 잘 모르는 아내가 시험장이나 잘 찾아가려나 싶어 아이들을 차 뒷자리에 태우고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토익 공부를 시작할 즈음에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모두 잠든 한밤중에 열심히 미드도 보고 책도 읽었다. 지금처럼 SNS나 온라인동호회 같은 것들도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놀았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부터는 동네 아이 엄마들과 모여 열심히 수다도 떨었다. 그런데 가끔 마음이 허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빼고 할 수 있는 내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만 바라보느라 세상을 향해선 닫혀 있던 문을 두드려주는 사람들이 하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이클처럼 찾아온 그들 덕분에 나는 내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섰다. 스토리텔링을 시작했고 도서관 봉사활동을 하고 독서 모임도 하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땄다. 같이 글 쓰러 다니자고 찾아온 마이클을 따라나선 덕에 지금 이렇게 글도 쓴다.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 삶에 정체되었던 시간마다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나서길 망설이던 순간마다 등을 떠밀어 준 사람들. 참 복도 많지, 마이클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주었다. 지금 내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이 그들과 시작되었다. 내가 잘한 거라면, 함께 하자는 마이클의 권유를 용기 있게 받아들인 달보처럼 그들이 내민 손길을 거절하지 않고 마주 잡았던 거다. 껍데기를 깨고 나갈 수 있게 먼저 다가와 주고 함께 해 준 나의 모든 마이클들에게 고맙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마이클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마이클이 들고 다닌 카세트 플레이어 대신 그림책을 들고서 말이다.  

  그림책 옆에 끼고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릴 때, 부디 그 문을 열고 내 손을 잡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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