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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Dec 13. 2021

안아줄게

양쌤의 픽 4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박지연/재능교육

  오래전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엄마 뱃속에서 7개월 만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생의 건강이 위태로워지자 간호사는 언니와 동생을 한 인큐베이터에 넣어 주었다. 1kg 남짓 눈도 뜨지 못하는 작은 아기들이 있는 힘을 다해 생을 이어갈 때, 언니가 동생을 감싸 안듯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 후 동생은 기적처럼 회복되었고 쌍둥이 자매는 건강하게 자랐다.     


  무엇이든 안아주는 걸 좋아하는 곰이 있었다. 곰은 초코차도 아주 좋아했다. 

  어느 날, 초코가루가 떨어져 사러 가는 길에 곰은 울고 있는 여우를 만난다. 친구들의 오해 때문에 속상해서 우는 여우를 곰은 그냥 꼭 안아주었다. 여우는 어리둥절했지만 조금씩 울음을 그치게 된다. 

  곰은 다시 길을 가다가 화가 난 돼지를 만난다. 돼지는 제때 도착하지 않는 버스 때문에 자신이 게으르게 보일까 봐 화가 나 있었다. 곰은 그저 돼지를 꼭 안아주었고 어느새 돼지는 조금씩 미소를 되찾게 된다. 

  초코가루를 사러가는 길에 곰은 말썽꾸러기 토끼 삼총사도 만난다. 곰의 바구니를 노리며 사납게 구는 토끼들을 곰이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자 토끼들은 점점 순하고 귀여운 얼굴로 바뀌게 된다. 

  곰이 이렇게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초코가루 가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곰은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그 눈 내리는 밤에, 길에서 만났던 여우와 돼지와 토끼들이 곰이 가장 좋아하는 초코가루를 가지고 찾아온다. 곰은 초코차를 만들고 모두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함께 나누어 마신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하는 유아 수업에서 이 그림책을 들려줄 때면 엄마들 입에서 탄성이 나온다. 포근한 그림 따뜻한 이야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와 아이가 꼭 껴안고서 온 눈과 귀를 집중한다. 이 그림책을 보는 내내 서로에게 갈색곰의 푹신한 가슴이 되어주고 상냥한 손길이 되어준다. 사랑스런 눈 맞춤을 하고 서로의 뺨을 맞댄다. 이야기가 끝나고 “선생님은 안아줄 사람이 없네” 하면 아이들이 달려 나와 꼭 안아준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두 팔이 내 목을 감싸고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꼭 끌어안으면 아! 정말 행복하다. 몸으로 부딪쳐온 아이들의 맑음이 순간 내 몸과 마음을 꽉 채운다.    


  두 팔을 벌려 가슴 가득 서로를 안아준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무방비로 내 심장을 너에게 내어줄 만큼 네가 소중하고 너를 신뢰한다는 걸 알게 하는 것.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서로의 팔딱거리는 심장을 공유하며 잠시 하나가 되고 너를 나처럼 나를 너처럼 토닥이는 것.

  슬프거나 놀라거나 화가 나서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릴 때 안전한 울타리 같은 두 팔 안에서 원래의 삶의 속도를 회복하게 되는 것.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기쁨에 대한 사심 없는 축하와 힘듦에 대한 속 깊은 응원을 보내는 것.

  그냥 기분 좋아지게 하는 것.    


  딸은 나에게 나는 남편에게 툭하면 안아달라고 한다. 시도 때도 없고 대단한 이유도 없다. 아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나를 안아주기도 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남편을 내가 먼저 안아주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안아주어야 할 때를 안다. 우리는 안아주며, 안고 토닥이며 서로에게 필요한 위로와 격려와 지지와 사랑을 보낸다. 겪은 어떤 일도 겪어야 할 어떤 일도 서로의 품 안에서 사그라들고 또 피어난다. 

  안아주면, 꼭 안아주면 정말 괜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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