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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Dec 23. 2021

눈이 오면 좋겠어요

양쌤의 픽 5  <눈이 오는 소리> - 천미진/홍단단 (키즈엠)


눈 내리는 밤 어떤 소리를 듣고 싶나요?   

 

겨울날 아침, 창밖으로 밤새 하얗게 내린 눈을 본 선율이는 울고 만다. 눈이 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자꾸 잠든 사이에 눈이 와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니 몰랐다며 선율이를 달랜다. 그 말을 들은 눈송이들은 선율이가 볼 수 있게 다음에 올 때는 꼭 소리를 내자고 약속한다. 며칠이 지난 밤에 찾아온 눈송이들은 선율이가 알 수 있게 소리를 낸다. 꼬마들이 좋아하는 강아지 소리로. 그러자 온 동네 강아지들이 깜짝 놀라 다 함께 짖기 시작하고 선율이는 시끄럽다며 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며칠 뒤에 눈송이들은 얌전한 고양이 소리를 내며 내린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고양이들이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그걸 본 강아지들은 마구 짖는다. 선율이는 일어나기는커녕 귀를 막아버린다. 눈송이들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며칠 뒤 노래를 하며 내린다. 노래를 부르다 신이 난 눈송이들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노랫소리는 더 커진다. 잠이 깬 선율이가 커튼을 걷고 밖을 향해 시끄럽다고 소리를 치는 순간 눈송이들은 뚝 노래를 그친다. 선율이는 드디어 눈이 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소리 없이 펄펄 눈이 내리는 밤이다.    


선율이를 깨우기 위해 눈송이들은 여러 소리를 내지만 선율이가 창밖을 본 순간, 눈송이들은 조용히 내리기만 한다. 눈 내리는 밤. 어떤 소리를 듣고 싶은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얀 눈이 내리는 밤에 어울리는 것은 고요함이다.     


너무 추워서 차를 끌고 외출한 어느 겨울밤이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 펑펑 내리는 눈은 내리자마자 꽁꽁 얼었고 할 수 없이 차를 주차장에 두고 집까지 걸어갔다.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주택들 사이의 좁은 길과 시장을 가로질러 아파트와 상가들을 지나갔다. 걷다가 자동차 바큇자국이 난 눈 속에 떨어진 휴대폰을 발견했다. 눈이 없었다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발이 푹 들어갈 정도로 눈이 왔으니 휴대폰을 놓치고도 몰랐겠다. 앞뒤를 살펴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은 나중에 주인이 찾으러 오기 편할 것 같아 바로 앞 과자 할인점에 맡겼다. 집으로 가는 익숙한 길, 그날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보통의 날 보통의 시간이라면 들리는 소리가 없었다. 눈 밟는 소리 정도가 들렸으려나… 

완벽하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신기한 밤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늘 이 길을 오갔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불은 켜져 있으나 즐거운 침묵 중인 가게들과 하얀 길이 옛날 크리스마스 카드 앞면에 있던 눈 덮인 마을 같았다.     


눈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따뜻한 남쪽 바다를 보며 자란 나는 결혼하기 전까진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눈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진눈깨비 아닌 함박눈은 TV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눈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밖에. 눈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보고 싶었다. 이제는 겨울마다 눈 구경이 쉬워졌지만 그래도 겨울만 되면 눈을 기다린다. 일기예보에 눈 소식이라도 있으면 걱정이 늘어지는 남편 사정이야 어떻든 나는 좋기만 하다.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운전하기 어려워도 상관없다. 안 나가면 되지. 버스 타면 되지. 배달이 안 되면 ‘냉장고 파먹기’하면 되지. 꽁꽁 언 길은 천천히 걸으면 되지. 시커멓게 눈 녹은 물이 튄 바지는 빨면 되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오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발을 묶어버리는 그런 눈 말고요, 모든 걱정과 불안을 덮어버릴 만큼 하얗고 소담스러운 눈이요. 눈 내리는 고요한 밤을 기다려 볼래요.

Merry Christmas~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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