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쌤의 another story 24
결혼하며 장만한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은 피아노였다. 좁은 신혼집, 안방 침대 옆에는 화장대 대신 피아노가 있었다. 첫 아이의 태교를 함께 해 주었던 피아노는 아기침대의 곁도 든든히 지켜 주었다. 세 번의 이사를 거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피아노는 우리 집에서 여전히 최고가 터줏대감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아이들이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피아노 전공은 아니었지만 오래 배웠던 터라 초급 과정은 직접 가르쳤다. 사실 학원비를 아껴보자는 마음이 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연주하던 악보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나의 유년의 추억까지 아이들이 고스란히 물려받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나처럼 피아노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많이 가지길 바랐다.
나름 열심히 가르쳤고 학원비를 아낀 것도 맞지만 그냥 학원에 보내는 게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피아노 좀 치려고 하면 찾아오는 아들 친구들 때문에 아들은 땡땡이치기 일쑤였고, 피아노 가르칠 때면 무서워지는 엄마 땜에 숨도 크게 못 쉬었던 딸을 생각하면 그렇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좋은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 즐겁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지만, 엄마의 악보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섭섭하기도 했다.
내가 그랬듯 딸아이에게 피아노는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기분이 좋을 때든 우울할 때든 심심할 때든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느긋하게 피아노를 칠 여유가 없었지만, 딸은 틈날 때마다 늘 피아노를 쳤다. 늦은 밤 피아노를 치며 고3의 입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딸은 한밤중에도 헤드폰을 끼고 연주할 수 있는 전자키보드를 사달라고 했다. 전자 악기의 소리는 가끔 아주 매력적일 때가 있다. 게다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칠 수 있다니 더 그렇다.
며칠간은 살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해 보기도 했다. 덩치가 커서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습기도 조심해야 하고 조율도 해 주어야 하지만 나는, 나는 아무래도 어쿠스틱한 피아노의 소리가 좋다. 정성 가득한 나무의 소리가 좋다. 전자 악기가 아무리 세밀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 세밀하게 나타나는 나무의 울림이 있는 피아노가 좋다. 윗집 아랫집 옆집 신경 쓰느라 아파트에서 마음껏 연주할 수 없다 해도 말이다.
나의 첫 번째 피아노는 아직 친정집에 있다. 내가 일곱 살 무렵 부모님이 사 주신 피아노다. 그 피아노가 처음 집에 올 때를 잊을 수 없다. 기다랗고 좁은 화단을 따라 들어오던 반짝반짝 윤이 나던 검정 피아노를 맞이하느라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엄마는 손수 파란색 벨벳 천으로 피아노와 의자의 덮개를 만들어주셨다.
나의 어렸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 중에 조그만 모형 피아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뚱땅거리는 사진이 있다. 피아노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엄마는 내가 다섯 살 때 피아노 학원을 수소문하셨는데 너무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나서였는지 한 선생님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바른 자세로 배워야 한다고 회초리를 들고 가르치셨다. 계란을 쥔 것처럼 손을 오므리고 치라던 선생님 말씀에 바짝 얼어 피아노를 치던 때가 떠오른다. 부모님은 선생님을 무서워하면서도 열심인 내가 무척 기특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피아노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큰맘 먹고 장만하신 게 아닌가 싶다.
20년을 나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행복한 소리를 들려주었던 피아노를 남겨두고 나는 새로운 피아노와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친정에 갈 때마다 만나는 피아노는 별말 안 해도 통하는 푸근한 친구였고 때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하지만 명절이나 휴가 때 아이들이 치지 않으면 항상 입을 다문 채 우두커니 방에 앉아있기만 하는 피아노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그런데 불혹을 넘긴 피아노가 칠순이 된 엄마의 손끝에서 소리를 되찾았다. 10여년 전 귀촌하시면서 피아노를 데리고 가신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피아노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한 번도 피아노를 쳐보지 않으셨지만 성가대를 하셔서 악보를 볼 줄 아신 덕에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치기 시작하셨다. 명절날 오른손 멜로디를 받쳐줄 왼손 반주를 쉽게 알려드렸는데 하루는 전화하셔서 들어보라 하시며 찬송가를 쳐 주셨다. 전화기로 들리는 엄마의 피아노 연주에 코끝이 찡했다. 제대로 배우지 않아 서툴지만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한 소리였다. 곁에 계셨다면 크게 박수 쳐 드리거나 하이 파이브라도 하며 칭찬해 드렸을 텐데, 딸이 멀리 살아 이렇게밖에 나눌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엄마는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교습을 받으시다가 최근에 그만두셨다. 피아노 코드를 비롯한 이론 공부가 너무 어려우시단다. 늘 바쁘시다면서도 시간을 내어 연습하시곤 하는데 피아노가 제대로 소리가 날 리 없다. 어떤 건반은 소리가 안 나기도 하고 어떤 건반은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하지만, 피아노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삐걱삐걱 힘겹게 소리를 내고 있다고 영영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얼마 전 조율사가 다녀갔다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나이도 나이인 데다가 오래 돌보지 않아 조율사가 아주 애를 먹었던 것 같다. 피아노는 반짝 기운을 냈다. 불사조처럼 다시 태어났다. 주름지고 굵어진 손마디에 아주 오래전의 어린 딸 못지않은 설렘과 열정을 담아 피아노를 치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딸에게도 피아노는 대를 이어 좋은 친구가 되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을 연주했었던 피아노는 이제 초급 악보와 찬송가밖에 연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마흔 해가 넘는 세월을 견뎌온 피아노와 일흔 해의 세월을 더 치열하게 이겨낸 연주자가 힘을 합쳐 소리를 낼 때의 감동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부디 오래오래 그 감동의 소리를 들려주시길, 마음을 다해 연주자의 건강과 피아노의 무탈함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