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를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담한 정원, 그곳에 심어진 몇 그루의 무화과, 여기에 약간의 치즈와 서너 명의 친구만 있으면 충분했다.
<니체의 말> ‘만족이라는 사치’ 중에서
소셜클럽 채팅방에 필사가 올라왔다. 일 년이 넘었다. 보고 듣고 하고 싶은 모든 것으로문어발확장중인 소셜클럽이 주 4회 필사를 시작한 지도.
쓰기 싫은 날은 안 쓰고, 어떤 날은 지나간 것까지 몰아서 쓰기도 한다. 쓰지 않는 날에도 친구들이 올린 필사를 꼭 읽어보는데 ‘글자가 하나 빠졌네’ ‘글자가 틀렸네’ 하며 밉상 짓을 하는 재미가 있다.
나는 오래전에 1200쪽에 달하는(무거워서 도저히 누워서는 읽을 수 없는)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오타 찾는 재미에 아주 열심히 읽었던 전력이 있다(어느 출판사라 말할 순 없지만 대단했다) 그렇다고 내가 쓰는 글에 오탈자가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발견하고 느낄 작은 희열을 기꺼이 제공한다.
중학생 딸이 철학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해서 샀는데 읽지는 않는다며 B가 한 구절을 필사해서 올렸다. 붓펜을 꺼내 들기에 앞서 아침 일찍 필사를 올린 그녀에게 답글을 보냈다.
아담한 베란다, 그곳에 심어진 두 그루의 커피나무, 여기에 약간의 육포와 세 명의 친구가 있으니…
나 좀 사치스러운 여자네ㅋㅋ
큭큭거리던 B는며칠 뒤에 J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짧은 기차여행 때 육포를 사서 가자고 했고 W가 육포를 준비하겠다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침 각자의 소박한(?) 사치를 이야기했다. 전기밥솥 대신 냄비에 밥을 했다가 태워 먹은 덕에 얻은 두툼한 누룽지와 겨울 아침 운동 후의 뜨거운 라떼 한 잔과 장식용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필사의 순간을 허락한 니체의 책이 그녀들의 사치 품목이다.
해가 잘 드는 베란다, 크고 작은 화분들 틈에서 몇 년째 커피콩을 보여주지는않지만 잘 자라는 커피나무가 있고, 니체의 치즈 대신 던져본 육포 얘기에 대뜸 기차여행 때 준비하겠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오늘이 참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