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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Dec 21. 2022

지금 듣는 노래

양쌤의 another story27

 9시가 넘어서야 블라인드를 걷었더니 하늘은 온통 눈의 기운을 머금은 회색빛이다. 밤새 눈이 왔나 보다. 눈이 쌓였다. 눈이 올 때마다 드는 생각, 눈도장만 찍지 말고 눈오리 집게를 사 왔어야 했는데. 나밖에 갖고 놀 사람이 없으니 계속 쳐다만 보다 온다.

 잠도 깰 겸 TV를 켰더니 오늘의 겨울을 완전하게 만든 하얀 눈이 산성비보다 더 안 좋은 산성눈이라며 산통 깨는 소리를 한다. 27층에서 아침마다 눈 맞추는 산이 갑자기 흐리멍덩해 보이고 하얀 눈이 꾀죄죄해 보이는 건 분명 TV 탓이다.


 오랜만에 한가한 늦은 아침, 냉동실에 쟁여두는 빵도 똑 떨어지고 맹물만 들이키며 브런치 알림창을 열어 보았다. 우리 집과 라면 취향이 같은 작가님의 글을 보는 순간, 아침부터 너구리 한 마리를 뱃속으로 몰아넣어야 하나 고민했다. 눈 내린 아침 라면 한 그릇이라… 이런 날씨라면 괜찮은 선택이긴 한데… 수납장을 열었더니 너구리는 어디 가고 공복의 위장을 불태울 그런 라면들만 남았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아침이라도 공복은 용납할 수 없다. 텅 빈 뱃속은 예민함과 조급증을 부르니까. 바나나 한 개, 사과 반쪽, 귤 두 개에다 콘수프를 데워 먹고 기운을 내서 커피콩을 갈았다. 손목과 팔꿈치와 어깨가 줄 서서 병원 갈 준비를 하는 걸 느꼈지만 전동 그라인더의 유혹을 이겨내고 무사히 커피를 내렸다.


 산성눈이라도 뽀드득 밟아볼 겨를도 없이 눈이 녹기 시작했다.

 모노톤의 겨울, 길거리의 캐럴이 사라진 이후로는 영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질 않는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플레이리스트에 곡을 차곡차곡 넣었다.      

 

 당연히 첫 곡은 ‘Wham!’의 ‘Last Christmas’.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가요 톱텐’에서 벗어나 팝송의 세계로 인도한 노래. 왬의 두 멤버가 눈 덮인 산장에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는데, 떨어진 트리 장식을 줍다가 친구의 여친과 스파크가 튀는 조지 마이클의 모습은 참 오래 설레게 했었다.

Wham! 의 앤드류 리즐리 그리고 조지 마이클 (앤드류 리즐리와 누가 닮았다 했는데 이제 보니 김래원 배우가 보이는..)

 그리고 ‘Mariah Carey’의 캐럴들. 낯선 곳에서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며 계절을 가리지 않고 크게 틀어놓곤 했던 그녀의 캐럴은 나에게 ‘위송빠레’같은 응원가였고 힐링송이었다.

12월에 들어서면 더 열심히 듣던 CD였는데 이젠 CD플레이어가 없다.

 ‘Michael Bublé’의 달달하고 편안한 캐럴과 ‘Nat King Cole’의 캐럴,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로 오두방정 어깨춤을 추게 하는 신나는 캐럴들도 플레이리스트에 빠질 수 없다.

 

 요즘 최애곡 ‘Straight No Chaser(SNC)’의 ‘Text Me Merry Christmas’로 플레이리스트는 완성된다. 인디애나 대학의 아카펠라 동아리에서 시작된 SNC와 ‘겨울왕국’에서 안나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Kristen Bell’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하는 연인의 아쉬움을 신나고 귀엽게 부른 노래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는 6년 동안 한 번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했던 남편과 나의 장거리 연애를 생각나게 하는데 볼 때마다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     

Text Me Merry Christmas 뮤직 비디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2월이 시작되기 무섭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곤 했는데 올해는 재작년에 만들었던 가랜드 하나 겨우 달아놓았다. LED 알전구라도 사서 달아볼 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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