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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Feb 14. 2023

친구에게

양쌤의 another story 36

아침에 눈을 떴는데 네 생각이 났어.      


뒤척이다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렸는데 아침이 오려는 건지 밤이 오려는 건지 모르겠더라.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면 밤인 줄 알고 계속 잤을 거야. 

아침인데 이렇게 어두운 걸 보니 아직도 비가 오나보다 했어.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전날 내리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지.      

몸도 천근만근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 있잖아. 그날이 딱 그랬어. 

당장 해야 할 일을 찾지 않으면 그렇게 누워있다가 오전이 다 지나갈 것만 같았어. 

 ‘오늘 뭘 해야 하더라?’ 

갑자기 네가 생각났어.     


 ‘메리 크리스마스’ 문자라도 해야지 했는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새해 인사는 꼭 해야지 했는데 새해 인사를 하기가 민망할 만큼 지나버렸네.

1년에 한두 번 안부를 물으면서 나는 핑곗거리만 찾았더라. 

너와 못 만나는 이유, 내가 찾아가지 않을 이유.

찾은 핑계라 해봤자 고작 바쁘다는 거지.

 ‘5월만 지나면 좀 괜찮으니까… ’ ‘가을이 1년 중 제일 바쁠 때라… ’ 

(누가 들으면 수억 버는 줄 알겠네, 그지?)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춥다며 날이 괜찮아지면 만나자고 했지.

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으면 섭섭하면서도, 차라지 받지 않았으면 하다가 받지 않아서 다행이다 했어.

전화보다는 점점 문자가 편해지고 문자도 점점 드문드문해지면서 그렇게 몇 년을 보냈네. 

나에게 너의 안부를 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묻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났나 봐.      


차가운 베란다 타일 바닥에 맨발로 서서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어.

비는 오지 않았어. 구름이 하늘을 빈틈없이 메웠을 뿐이었지.

그런데 구름의 색, 그날따라 구름의 색이 마음에 걸렸어. 

‘저 구름을 무슨 색이라고 말해야 할까?’ 

진하고 연한, 밝고 어두운 구름이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냥 회색 구름이라고 하면 항상 많이 남아있던 회색 크레파스 색깔만 떠오르잖아. 그냥 회색은 구름 색깔에 안 어울리는 이름 같았어. 


구름은 원래 모든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에 흰색으로 보인대. 그런데 구름끼리 서로 빛을 반사하고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면서 어두워 보이거나, 구름이 두꺼울수록 빛이 통과하기 어려워서 어두워 보이기도 한대.     


너와 나도 그 구름들 같아. 

어떤 색깔의 빛도 다 받아들여 새로운 길을 만들고, 때로는 서로의 그늘에 서기도 하는. 가끔 각자가 가진 슬픔이 너무 짙어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는 것같을 때도 있지만 언제 그랬나 싶게 다 털어내고 다시 환하게 마주하는 구름 말이야.

나는 여전히 네 마음이 힘들고 몸은 아프고 연락을 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거운 물방울들을 털어내며 빨갛고 노란, 세상의 예쁜 모든 빛을 머금고 또 나눠줄 거라고 생각해.     


친구야, 올해는 정말 벚꽃이 피는 길을 같이 걸어보자. 

전화할게. 꼭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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