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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Feb 13. 2023

봄밤 같은 겨울밤 무얼 하면 좋을까요?

양쌤의 another story 35

 밤 산책을 나가야지요. 혼자도 좋지만 둘이서 가면 더 좋아요.


 저는 사실 저녁 산책을 나가본 적이 별로 없어요. 저녁을 먹은 후에 소파에 누워 TV 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배부를 땐 걷지 않는다’ 가 저의 대표적인 개똥철학이에요.      


 아이들은 친구 만나러 가고 남편과 저는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맛있는데 배는 안 부른 뭐 그런 메뉴를 찾다가 들깨 수제비로 합의를 봤어요. 절대 배부르게는 안 먹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자꾸 반죽을 찔끔찔끔 추가하게 되더군요. 몸에 좋은 거라며 들깨가루를 큼직하게 세 숟가락을 떠 넣었어요. 몸에 좋은 거 남기면 안 되니까 둘이서 최후의 국물 한 방울까지 뱃속에 저장했지요.      


 소파와 TV와 함께 하는 힐링의 시간만이 남아있는 그때, 살짝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어요.

 하~~~ ‘거미형 체형’. 체중은 그대로인데 체형이 달라지는 몹쓸 마법에 걸린,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예전처럼 막 먹고 막 눕는 제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그런데 저와는 반대로 배부르면 서 있기라도 하는 남편이 산책을 가자고 하더군요.

 “지금 TV 재밌는 거 하나도 없던데 같이 나갈래?”

 혼자였으면 ‘아, 운동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며 소파에서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했을텐데 남편 말에 얼른 따라나섰어요.      


 바람 많이 부는 겨울에 안양천을 걸으면 정말 춥거든요. 그런데 어젯밤은 정말 봄 같았어요. 봉오리를 내밀기 전에 꽃나무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포근한 밤이었어요. 미세먼지가 많다고 했지만 코로나가 설치기 전엔 미세먼지 심하다고 언제 마스크 썼나요? 한 3년 안 마셨으니 하루쯤은 괜찮겠지 싶어서 마스크까지 벗고 걸었지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걸음이 점점 빨라졌어요.

 ‘대교’라는 이름이 멋쩍게 다소 아담한 안양대교가 오색으로 예쁘게 빛나고 있었어요. 낮에는 바둑이나 장기 두시는 어르신들이 계시던 다리 아래에 밤이면 예쁜 고래와 물고기들이 나타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따뜻한 겨울밤 산책을 나선 건 우리 뿐만이 아니었어요. 왜가리도 나왔고 오리 커플도 나왔더군요. 오리네 동네는 그늘이라 그런지 며칠 따뜻했는데도 얼음이 다 녹지 않았더라구요. 근데 갑자기 궁금했어요.

 “있잖아, 저번 여름에 비 엄청 많이 와서 안양천 물에 다 잠겼을 때 오리랑 왜가리랑 다 어디 있었을까?”

 “집에 있었겠지.”

 “아니, 그때 도로 바로 근처까지 물이 찼는데 둥지도 다 없어졌지. 어디 있었을까?”

 “모올라. 나는 우리 애들도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데 오리 집까지 어떻게 아니?”

 남편은 안 그렇겠지만 저는 궁금한 게 많은 아줌마라 오리네 속사정도 아주 궁금합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며 사진도 찍으며 걷다 보니 땀이 나서 패딩을 벗었다 입었다 했어요.  

 앗! 그런데 제가 입고 있었던 옷이 오리털 패딩이었네요. 오리털 패딩 입고 장마철 오리 걱정이라니요...

  "오리야, 미안. 따뜻하게 오래 잘 입을게."

 

 

 봄밤 같은 겨울밤엔 산책 어떠세요?

 이런 날 밤산책은 따뜻한 공기에 마음이 들뜨고 보는 것마다 다 예쁘게 보여요. 좁혀졌던 미간도 어느새 펴지실 걸요?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아주 가뿐해지실 거예요.

 물론 따뜻해서 걷기 좋다고 너무 멀리 가시면 저처럼 돌아올 땐 버스를 타야 할 수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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