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월드를 읽고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진 부분이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이 쓴 건가? 다시 겉표지를 봤다. '수전 네이피어 지음'이라고 쓰여있었다.
'일본인이 아니네?'
번역도 매끄럽고, 내용도 뭔가 하야오의 작품관에 대해 잘 나와있어서, 일본인이 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8년 동안 이 책을 집필한 '수전 네이피어'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
2. 주 100시간 이상 일을 한 미야자키 하야오
3. 2013년 은퇴를 끝으로...
아마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한 번이라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이 틀어주셨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를 처음 보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 당시 깊게 무엇을 생각하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지브리가 주는 깊은 울림 같은 것이 내 머리를 세게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했다. 덩치에 맞지 않게 부끄러움, 수줍음의 끝판왕을 달리고 있던 나는 그 당시 명탐정 코난을 필두로 이누야샤, 카우보이 비밥, 러브히나 등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닥치는 대로 봤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지브리의 세계관은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은 자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면서 사람의 흥미를 굉장히 끈다. 그런데,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자연', '전쟁'과 같은 심오한 주제를 굉장히 와 닿게(?) 풀어 써냈다.
두 달 전쯤부터 코로나로 인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마녀 배달부 키키, 포뇨, 귀를 기울이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 애니를 보기 시작했다.
그중 아이는 포뇨에 굉장히 열광했다. 귀여운 아기 물고기 포뇨는 5살. 올해 우리 아이와 나이가 같다. 성대모사를 할 만큼 포뇨만 보여주면 신이 나서 갑자기 말 잘 듣는 모드로 변신한다.
아이는 포뇨를 여러 번 보면서 나에게 이런 걸 묻기 시작한다.
"아빠, 제초제가 뭐야?"
"왜 배들이 저렇게 모여있어?"
"왜 그물이 포뇨를 잡아가려고 해?"
아마 포뇨를 보신 분이라면, 아이가 왜 나에게 이걸 물어봤는지 이해하실 것이다. 포뇨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미야자키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비판적인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 쉽게 풀었다고 해야 하나. 아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재미'와 '메시지'를 준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우리에게 반성과 재미 두 가지를 모두 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미야자키 월드를 형성한 주된 매력요소가 아닐까 싶다.
책에 직접적으로 100시간 이상 했다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가정보다는 일에 충실했다는 내용이 곳곳에 언급된다.
하야오는 고집이 있고 당돌했다. 그런 면 때문에 회사에서 사람들과 마찰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야오를 내칠 수 없었던 것은 하야오의 그림을 그리는 속도였다고 한다. 60년대, 70년대에는 컴퓨터도 제대로 마련이 되지 않아 손으로 다 그려서 프레임을 짰다고 하니, 말을 하지 않아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하야오가 승승장구하지는 못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파산할 위기를 겪으며 힘들어했지만 같이 일을 한 스즈키의 마케팅 홍보능력 덕분에 살아났다고 한다. 토토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키키 이런 작품들은 나중에 조명되긴 했지만 시대와 코드가 맞지 않았는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모노노케 히메부터 지브리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요소는 하야오는 포기를 하려 했다는 점이다. 2013년 '바람이 분다'를 제작할 때까지 하야오는 일만 했지만, 일을 엄청나게 힘들어했음에 틀림없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을 벌어야 했는데, 그래서 세상과 타협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기자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하야오는 엄청 분노했다고 한다.
"스즈키의 마케팅 홍보 때문에 지브리가 있을 수 있었다."
모노노케 히메 때 이 이야기를 듣고, 다음 작품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마케팅을 하지 말자고 할 정도였으니, 외골수적인 하야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인정신'이라고 할까. 왠지 모르게 '스티브 잡스'와 닮은 느낌이 있다.
2013년 은퇴 발표를 하고 쉰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야오는 특별한 취향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일생이 모순덩어리라고 한다.
'비행기를 좋아하지만 타는 건 즐기지 않고, 기술의 위험성을 깊이 걱정한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밖에서 놀지 않고 TV만 보려 한다고 호되게 꾸짖는다. 일요일이면 집 근처 강을 청소하지만, 강성 생태주의자들과 손잡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삶을 강조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자주 죽음을 이야기했다'라고 한다.
나는 오히려 저런 점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비행기를 좋아하지만 타는 건 즐기지 않고, 기술의 위험성이 걱정된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나는 기술의 발전을 돕는 개발자다. 그러면 흐름을 거슬러야 할까? 오히려 어떻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하야오의 작품을 못 본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책에 보니 마지막 한 작품을 더 하시는 것 같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야와 마녀'라는 이름의 작품인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아야와 마녀'가 참 기대가 된다.
하야오의 일대기를 보면서 '장인 정신'이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로 얼마나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지도 엿볼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지브리의 모든 작품을 보고 이 책을 읽었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이제라도 못 본 작품들을 보면서 하야오의 '메시지'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