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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14. 2021

다양한 범죄피해자들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예전부터 범죄피해자의 분류를 시도해 왔다. 벤자민 멘델존이라는 학자는 피해자의 책임 정도에 따라 ‘완전히 아무 잘못이 없는 피해자’에서부터 ‘피해자 자신만이 유죄인 피해자’로 범죄피해자를 분류하였다. 엘렌베르거(Elenberger)라는 학자는 성격상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피해자가 되기 쉬운 특성인 잠재적 피해자성과 그렇지 않은 일반적 피해자성을 구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1세대 범죄학자인 이윤호 교수님은 ‘비행적 피해자’, ‘유인 피해자’, ‘조심성 없는 피해자’,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피해자’ 등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범죄피해자를 분류하는 작업을 해 보았다. 범죄학자는 아니지만, 실무에서 접한 많은 사례들을 토대로 상식적인 기준으로 분류를 해 보았다. 범죄피해자 분류에 관한 새로운 기준이나 논의는 아니고, 앞서 본 벤자민 멘델스존의 피해자 책임 정도에 따른 피해자 유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각 유형과 각 유형별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피해자에게 책임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유형의 피해자가 있다피해자가 하필 그 시간에 현장에 있었던 것 외에는 피해자를 전혀 탓할 수 없을 정도로 범죄발생에 있어 피해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경우이다. 뒤에서 볼 ‘묻지 마 범죄’ 그리고 물리적으로 대항할 힘이 미약한 어린 아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서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서 본 바와 같이, 과실범죄 역시 엄연히 범죄이기 때문에 성수대교 붕괴사고 피해자처럼 귀책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피해자들도 이 유형의 피해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피해자에게 일정 부분 범죄발생에 책임이 있는 범죄 피해자 유형이 있다. 일정 부분 책임이라고 하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부주의, 안일함, 욕심 등이 범죄피해 발생이나 확대에 기여한 것을 의미한다. 높은 이자를 기대하고 돈을 빌려 주었다가 사기 피해자가 된 사람, 기획부동산이나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등 각종 투자사기 사건 피해자, 도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싸움 발생에 일정 원인을 제공한 폭행 피해자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가해자를 도발한 피해자와 같이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피해자도 있다. 먼저 싸움을 걸었다가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된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심지어는 가해자보다 책임이 더 큰 피해자도 생각할 수 있는데, 정당방위에 의하여 상해나 사망에 이른 사람이 그 예에 해당할 수 있다.(물론,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 범죄 성립도 되지 않으므로 상해나 사망에 이른 사람을 엄밀한 의미에서 범죄 피해자로 보긴 어렵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자신만이 유죄인 피해자 가해자가 피해자 본인인 경우를 들 수 있다. 얼핏 자상(自傷)이나 자살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자기 몸을 해치는 것은 병역법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범죄가 아니다. 적절한 예로는 실화죄를 저지른 자가 그 불에 데이는 등 피해를 입은 경우이다.        


 이렇게 검찰수사관이나 변호사로 근무했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범죄피해자 분류를 해 보았는데, 단순히 호기심이나 흥미 차원에서 이와 같은 분류를 한 것은 아니다.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도 양형에서 고려하는 요소이고 법원 판결문에는 양형 판단 시 ‘특별감경 인자’로서 “피해자에게도 범행의 발생 또는 피해의 확대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경우”라는 문구로 기재가 된다. 따라서, 피해자가 범죄발생이나 피해확대에 일정 책임이 있다면 이에 대한 수사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검찰수사관은 이를 위해 피의자, 피해자를 비롯한 사건관계인 등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정하고 양형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고,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사는 감형을 위해 양형 자료로 피해자에게 일정 책임이 있음을 변론하기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위법한 행동을 한 자 그리고 비난받아야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가해자이다. 피해자 책임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면, ‘여자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니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는 식의 가해자 중심적인 폭력적 사고로 빠질 위험이 있다. 다만, 가해자의 혐의 유무나 양형에 대한 판단 또는 충실한 변론을 위해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피해자 책임의 정도를 확인하는 작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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