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스매니아 May 15. 2021

엉뚱한 이유로 감동받은 피의자


 아파트 이웃들을 때리고 아파트 단지 내 물품을 부수고 거기에 불까지 지르는 등 여러 가지 혐의로 수사를 받고 구속된 20대 중반의 피의자가 있었다. 피의자는 과거에도 비슷한 행위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막상 구속까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구속사건에서도 피해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반복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 걸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소란 피우는 등 위험한 행위를 서슴지 않아 범죄가 중대하고 재범의 위험성도 충분히 있었다. 게다가 피의자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지하던 어머니가 얼마 전에 사망하여 더욱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있었다. 결국 영장전담 판사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피의자가 도망할 염려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이 구속사건은 내가 아닌 검사실 다른 선임 계장님에게 배당이 되었다.  


 본인에게 배당된 사건은 아니었지만, 피의자가 검사실로 오기 전에는 피의자가 어떤 진술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고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검사실에서도 난동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 다른 조사 일정이 없을 때라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나와 마주 보고 앉은 선임 계장님이 피의자를 조사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조사가 시작되니 피의자에게 특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계장의 질문에 다소 소극적인 자세로 힘없이 대답하기도 하였고, 그 외에는 여느 구속 피의자와 비슷하게 담담히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 조사에 흥미를 잃어가면서 ‘내가 갖고 있는 사건기록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피의자를 조사하던 계장님이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OOO 씨 힘내라고 탄원서까지 써서 제출했는데, 이렇게 계속 주변 사람들 괴롭혀서 되겠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이 말을 듣자 여태 소극적인 태도와 답변으로 일관하던 피의자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진짜요? 탄원서를요?”

 “그럼, 여기 한 번 보세요. 이게 다 동네 사람들이 써준 탄원서라니까.”


 계장님은 기록에 편철된 탄원서를 빠르게 넘겼다. 피의자는 “아~” 하고 탄식을 하더니 고개를 떨궜다. 자신은 아파트 단지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었는데 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까지 써 주었다고 하니 감동받은 눈치였다. 피의자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주변 사람들 행동을 의식하고 탄원서 이야기에 감동까지 받는 것을 보니 아주 막장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연히 검사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검사님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 뒤편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평소 웃음이 많은 분도 아닌데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웃음 터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다. 결국 검사님의 추가 질문 및 조사까지 다 마치고 피의자를 보낸 뒤에 검사님이 선임 계장님에게 물었다. 

 

 “계장님, 아까 피의자한테 왜 그러셨어요? 장난친 거죠?”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난이라니요?”


 “탄원서요, 왜 동네 사람들이 선처 바란다고 탄원서 썼다고 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OOO이 얼마 전에 어머니 돌아가신 일까지 겪고 해서 불쌍하니 선처해 달라고 탄원서 써서  제출한 것 아니었어요?”


 알고 보니 동네 사람들은 「피의자가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더더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면서 전보다도 더 위험하고 과격한 행동들을 일삼고 있으니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구속을 시키고 엄벌에 처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취합하여 제출한 것이었다. 계장님은 비슷한 종류의 사건에서 제출되는 탄원서가 일반적으로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니 이 사건의 탄원서도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고 탄원서 앞부분(피의자가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더더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보고 뒤의 내용은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이었다. 


 엉뚱한 경위에서 비롯된 착각이지만, 피의자가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고 믿고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건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년 뒤 이 구속사건과 비슷한 행위와 죄명으로 다시 구속된 피의자가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사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자주 느꼈던 것이지만,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또,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한 사람의 반복되는 범행으로 여러 번 변론을 맡게 되는 경우도 많다보니 이 '성품 불변의 법칙'이 더 진리처럼 느껴 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몇 년 뒤 다른 사건에서 피의자가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검사의 머리를 손가락질하더니 다시 손을 자신의 머리카락 부분에 대고 손을 앞뒤로 흔드는 제스처를 취해 머리숱이 없는 검사를 놀렸다고 한다. 본인도 그다지 머리숱이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찌 되었거나 피의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놀림을 당한 검사는 피의자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같이 웃을 수도 없어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사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말 여러모로 엉뚱한 사람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검찰청 밖에서 만난 사람들 1 : 변사체 검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