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경 검찰청에서 근무할 때 검사장님과 오찬 행사가 있었던 자리에서 겪었던 일이다. 오찬 전에 총무과로부터 받은 행사 좌석 배치표를 보니, 나는 차장 검사님 앞에 그리고 친한 고참 수사관이 검사장님 앞자리에 앉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자리에서 기관장과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평범함을 추구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더 멀리 떨어진 좌석에 배치되지 않은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검사장님 바로 앞자리에 앉지 않는 사실만으로도 안도했다.
그런데, 그날은 수사관과 실무관이 탄 차량이 오찬 행사장에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검사장, 차장검사, 사무국장 등 간부들이 먼저 도착하여 착석한 상태였다. 나는 사전에 보았던 행사 좌석 배치표에서의 대략의 위치를 생각하고 차장검사님으로 보이는 사람의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오찬 행사가 시작된 직후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바로 검사장님이 아니던가! 검사장님이 직원들 프로필이 적혀 있는 종이를 보면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첫 대상은 바로 앞자리에 앉은 나였다.
“오호~ 조 계장은 취미가 축구경기 관람이라고 되어 있네요. 축구 경기를 직접 보러 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떤 경기를 보러 가나? 국가대표 경기?”
“K리그에 응원하는 팀이 있어서 주로 K리그 경기를 보러 가는데, 전에는 손흥민 선수를 보기 위해 독일에도 갔었습니다.”
“오, 외국까지? 정말 축구를 좋아하나 보네.”
일반적으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케이리그 경기를 직관(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한다고 하고 손흥민을 보기 위해 외국까지 갔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다른 간부들도 축구에 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호날도하고 메시 중에서 누가 뛰어난 것 같아요?”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시라소니 대 김두한’처럼 케케묵은 논쟁이기는 한데요. 전 굳이 누가 뛰어나다고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호날도 대 메시’ 하면 메시가 더 뛰어나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우리나라만 유독 호날도와 메시가 호각세입니다.”
** 참고로 호날도가 2019년 8월 상암에서 노쇼(No Show)를 하기 전의 일임 **
“오, 그건 왜죠?”
“일반인들은 플레이가 자기 눈에 많이 노출된 선수들을 좀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호날도가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과 같이 뛰었기 때문에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호날도의 플레이가 노출이 많이 되었고 또 단지 박지성과 팀 동료였다는 이유만으로 후한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구먼, 재미있네.”
이런 식의 대화가 한참 이어졌다. 그 날은 마침 오찬 장소가 청사에서 차로 이동해도 15분 이상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동 시간을 고려해 12시 45분 정도에 행사가 종료되었다. 그래서 40분 정도로 짧게 진행된 오찬 행사 중 무려 15~20분 가량이 간부들과 내가 주로 축구 관련 주제로 문답하는데 소요되었으니 다른 참석자들(수사관, 실무관 총 12명)에게는 말할 기회가 아주 적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불평하거나 나를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오찬 행사가 끝나고 몇 사람은 혼자 고생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특히 원래 검사장님 앞자리에 앉기로 되어 있던 고참 수사관은 본인을 위해 조 계장이 일부러 검사장님 앞에 앉은 줄 알았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사실은 검사장님 얼굴을 몰랐다고 했더니, “이유가 어찌 되었든 편하게 밥 먹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며 밥을 사겠다고 했고 이후 실제 밥을 얻어먹게 되었다. 약간의 어리숙함으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이기는 하지만, 취미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 나의 희생(?)으로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돕고 덤으로 밥까지 얻어먹었으니 이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이 에피소드를 몇몇 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어떤 사람은 “그래도 어떻게 검사장 얼굴을 모를 수 있어, 그건 좀 심하다. 검사장님한테 신경 좀 써!”라며 핀잔을 주었고, 또 어떤 사람은 “검사장님 얼굴을 굳이 알 필요는 없죠.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라며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