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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16. 2021

카를로스를미소 짓게한 대화는?


 조사했던 외국인 피의자 중에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 송치된 2명의 남미 국적(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있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범죄 중에서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국가 출신 국적의 사람에 의한 범죄 비율은 0.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의 혐의는 각자 국가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다음날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귀금속을 훔쳤다는 것이었고, 입국 3일 만에 검거되어 경찰서 조사를 거쳐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었다. 



 피의자들은 절도 범행 자체에 대해서는 자백하였고, CCTV 등 이들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도 충분했다. 문제는 이들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가 석연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모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은 항공편을 이용해 입국한 사실이 확인되고 범행 현장에 같이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범행 경위나 공모 여부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피의자 한 명은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인 ‘카를로스’였고, 다른 한 명은 오래전 사건으로 기억은 잘 나지 않으나 흔한 이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카를로스는 콜롬비아에서 20살까지 지역 축구선수 생활도 했었는데, 발목 부상을 한 번 크게 당하고 난 뒤 직업으로서 축구는 포기했다고 했다. 그래도 꾸준한 재활을 통해 몸 상태를 어느 정도 만들었고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은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가서 한국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려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올 때 갖고 온 돈이 거의 없어서 절도 범행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피의자 역시 한국에서 혹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입국하였다고 하면서 범행 경위에 대해서도 카를로스와 비슷한 진술을 했다. 자국에서는 배관 일을 주로 했다고 하였다. 


 범행 경위에 대한 두 사람의 진술 모두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춘 듯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하면서, 범행 당시에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고 같은 남미권 국적에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서로의 범행을 도운 것이라고 진술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었다고 했는데, 한국에 관광 비자를 통해 입국을 했다. 처음부터 불법취업 목적으로 입국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러한 점을 집중적으로 질문하면서, 카를로스에게는 다리도 불편한테 어떻게 한국에서 아이들한테 축구를 지도하려고 했냐고 캐물었지만, 이에 대해서 별 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냥 아무튼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알아보러 왔다고 우겼다. 전반적인 진술과 사정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 두 사람은 원래 서로 아는 사이이고 콜롬비아에서부터 한국에서 특수절도할 범행 계획을 세우고 함께 입국해서 함께 범행을 하다 발각된 것이 자연스러운 스토리 같아 보였다. 아마 이 둘은 처음부터, 한국에서 범행을 하다가 검거되고 재판까지 받을 경우에 대비해서 범죄의 우연성이나 단독범행 등에 대한 진술을 구상해 놨던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나 자료는 없었다. 그래도 객관적인 범행은 명백하였기 때문에 검사님이 기소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내 기초적인 조사가 끝나고 검사님이 추가 조사를 위해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하고 있을 때, 통역을 통해 카를로스에게 아는 한국인 축구선수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당시는 2009년이었음) 박지성을 안다면서 아주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도 이에 대한 화답(?)으로 콜롬비아 출신의 축구 영웅 사자머리로 유명한 '카를로스 발데라마'를 안다고 이야기하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뜬 발데라마의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돌려 카를로스 쪽으로 향하게 했다.


 순간, 카를로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비록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범죄자로 조사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기 나라의 축구 영웅, 자기 취미인 축구에 대해서 알아주는 먼 나라 수사관이 있으니 긴장이 조금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 것 같았다. 이 틈을 타 카를로스에게 처음부터 공범과 범행을 계획하고 한국에 온 것이 아닌지 넌지시 물어봤다. 카를로스는 다시 정색을 하더니 공범은 원래 아는 사이가 아니고 범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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