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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17. 2021

당직실 풍경

 검찰청에도 여느 공공기관처럼 당직 근무가 있다. 평일 숙직, 주말 일직, 주말 숙직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검찰청 당직이 다른 공공기관과 다른 점은, 검찰청 당직실은 24시간 돌아가는 검찰청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검찰업무 특성상 즉각적인 처리가 요구되는 경우도 많고 잠시라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는 업무도 많기 때문에, 일과 시간 이후 또는 휴일에도 필수적으로 업무를 보는 일정 인원이 청사 내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수배된 사람이 검거되어 당직실로 온 경우에 이에 대한 처리를 해야 한다. 벌금을 낼 여력이 되면 납부하게 한 뒤 석방을 시키고 벌금수배를 해제한다. 만약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구치소로 보내져서 그 사람의 판결문(약식명령문)에 기재되어 있는 구금일수만큼 구치소에서 살다 나와야 한다. 또, 수사기관에서 출석불응으로 체포영장을 받아 기소중지 처분된 사건의 피의자가 검거되어서 잡혀온 경우에는 48시간 이내에 석방 또는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여야 되기 때문에, 피의자에 대한 조사 및 수사가 요구된다. 그 밖에도 영장 업무, 변사 업무와 각종 민원 응대를 해야 한다. 물론 이 중 민원 응대와 접수업무 외에 모든 업무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당직 검사의 몫이다. 하지만 실무적인 일은 주로 6~9급 검찰수사관들이 당직실에서 수행하는 구조이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당직근무를 설 때 겪었던 일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청의 규모가 다른 청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에 당직 인원도 많다. 당시 나의 역할 중 하나는 검거된 벌금 수배자 중 당일 벌금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인계하는 것이었다.   

 그 날은 벌금 수배로 잡혀 온 사람이 8명 즘 되었는데 다들 얌전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유독 고래고래 떠들며 소란을 피웠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들으니 “판사 새끼들은 목이 두 개야? 내가 확~ 다 모가지를 따 버릴 거야, 이 씨발 놈의 새끼들”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검찰에서 판사를 찾는 것이나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나, 딱 봐도 술에 잔뜩 취해 주정 부리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벌금수배로 잡혀 온 사람이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벌금액을 일수로 환산한 기간만큼 노역장 유치로 구치소 등에서 있다가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1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라고 하면 통상 1일에 10만 원으로 계산을 하니 10일을 구치소에 있어야 한다. 아무튼 서울구치소로 가는 호송용 차를 타서도 그 벌금 수배자의 소란과 주정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청원경찰과 내가 몇 번 소리를 질러 제지를 하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다른 벌금 미납자들도 괜히 주취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는지 아무도 그 자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서울구치소로 가는 약 40분 내내 소란은 이어졌다. 그런데 목적지인 서울구치소에 거의 다다를 때 즘 그 벌금 미납자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서울구치소 도착을 약 1분가량 남겨뒀을 때 그가 조용하고 공손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저, 계장님 죄송한데 담배 한 대만 피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사람도 풍부한 구치소 생활 경험을 통해 서울구치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지금과 같이 행동하면 자신에게 험난한 시련이 닥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비록 며칠간의 구금생활이지만 자유로운 사회와 잠시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여 니코틴의 힘을 빌려서라도 시름을 잊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 사람의 언행이 비굴해 느껴졌지만, 인간의 나약한 모습의 전형(全形)을 보는 듯해 딱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호송차량이 구치소 앞에 도착하자, 그가 재빨리 내 앞으로 다가와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시 한번 흡연 허락을 구했다. 그때는 나도 흡연을 할 때라 마침 담배를 소지하고 있었다. 한 대 건네줬더니 무척 고마워하며 담배를 빨기 시작했다. 한겨울이라 추워서 그랬는지 앞에서 노려보고 있는 교도관의 시선이 부담이 되었는지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두 세 모금을 급하게 빨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구치소 교도관이 그 지명수배자에게 빨리 들어오라며 재촉하는 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 지명수배자는 아쉬워하며 다시 담배 몇 모금을 빛의 속도로 들이키더니 황급히 담뱃불을 끄고 구치소 정문을 통해 들어갔다.   


 어떤 수사관은 당직 책임자로 근무하는데, 벌금수배로 붙잡혀 온 사람이 ‘갖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도 벌금 30만 원에 약 2천 원 정도가 부족한데 어디 도움받을 데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단 돈 2천 원 때문에 구치소에 며칠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딱한 마음에 2천 원을 자기가 줄 테니 벌금 납입하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래도 돈을 그냥 받을 수는 없죠. 제가 양말 장사를 하는데 양말을 몇 켤레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낡은 가방에서 양말 세 켤 레를 꺼내서 줬다고 한다.        


 사실, 검찰 당직실(현재는 상황실로 운영) 근무는 몇 개의 에피소드나 글로 담기에는 어려운 고충과 애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직비는 직급에 관계없이 1만 원이 지급되었었다. 청사에 머물러 있는 시간만 최소 9시간에서 최대 15시간 그리고 이중 절반 이상을 경찰관, 벌금수배자, 민원인 등과 상대하며 실근무를 해도 이에 대한 대가는 하루 당직에 1만 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당직비가 다른 정부기관에 준해 현실적인 금액으로 책정이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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