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에서 수사관으로 근무를 하다 보면 피의자를 비롯한 사건 관계인들로부터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검사의 경우 특별히 설명해 주지 않아도 검사에게는 사람들이 알아서 “검사님”이라고 제대로 불러 주지만, 참여 수사관의 경우에는 정말 다양한 호칭을 듣게 된다.
피의자나 참고인으로부터 은근히 자주 듣는 호칭이 "검사"이다. 검사실에서 조사를 하는 사람이니 으레 검사인 줄 알고, 조사를 받으면서 “저기요, 검사님!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검사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검사님, 선처 좀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피의자나 참고인을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 사실, 피의자가 조사를 받기 위해 검사실에 도착했을 때 검사나 수사관이 당일 피의자를 조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조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이야기해 주었다면 피의자 등이 호칭에 대해 헷갈릴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 검찰청 복도에서 어떤 남자가 전화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남자는 통화 상대방에게 “여기, 검사 엄청 많은데, 내가 조사받는 방에는 검사가 4명이고 남자 검사 2명, 여자 검사 2명이야. 다른 방에도 검사들이 검사가 3-4명씩 있던데.”라고 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검찰청을 ‘검사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다.
검사실 참여 6~7급 수사관에 대한 전통적인 호칭인 "계장"이라고 정확하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검사가 조사 전에 피의자에게 기초 조사는 저기 있는 계장이 할 것이라고 안내하는 경우에는 나를 “계장”이라고 인식을 하고 조사 도중에 “계장님”이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그런 안내가 없었음에도 검찰 내에서는 널리 쓰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계장”이라는 호칭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화려한(?) 검찰 수사경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검찰청에 피의자나 피의자에 가까운 참고인 등으로 자주 들락날락했다는 의미이다. 다년간 또는 풍부한 경험을 통해 검사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사건 처리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척하면 척 아는 사람들이다.
"수사관"이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정확한 호칭인데, 이 장에서 언급된 다른 호칭들 때문에 오히려 이 정확한 호칭이 사용되는 경우는 50퍼센트 미만인 것 같다.
"주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주임은 원래 검찰청에 근무하는 8~9급 수사관을 부르는 호칭인데, 한 때는 본인의 원래 직급보다 낮게 불리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주임’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교도소나 구치소에서는 호송 등 실무적인 일을 하는 교도관을 주임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교도관을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어 검사실에 와서도 수사관에게 주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앞서 계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개 화려한 검찰 수사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들이라면, 검사실 참여 수사관을 주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제 갓 수형(受刑)의 세계에 입문한 초심자인 경우가 많았다.
의외로 "조사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신이 지금 당장 피의자 조사 또는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으니 자신의 앞에서 조사(신문)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조사관이라고 생각해서 조사관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또, 국세청이나 고용노동부 등 다른 관공서에도 조사 업무를 하는 공무원을 조사관으로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사관이라는 호칭이 익숙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수사가 조사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고, 조사관이라고 하면 조사만 하는 사람으로 국한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조사관이라는 호칭을 아주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틀린 개념도 아니어서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떤 피의자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지는 않는데....’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두루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역시 특별히 개의치 않는다.
수사관이나 조사관 대신 "사무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검찰청 수사관을 통칭하는 용어로 검찰사무관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무관이 5급 공무원의 직급을 뜻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6~8급 검찰직인 수사관에게 사무관이라는 호칭은 엄밀한 의미에서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인 직급보다 높게 부른다고 해서 그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그 반대는 종종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가 바로 "서기"라고 부르는 경우이다. 서기는 공무원 8급 직급에 대한 호칭이다. 앞서 본 대로 형사소송법 제243조에서는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할 때 검찰청 수사관 또는 서기관이나 서기를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피의자가 이 법조문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내가 동안(童顏)이라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8급 수사관으로 알고 서기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사실 그보다는 일제강점기 지금의 검사에 해당하는 검찰관과 함께 검찰 업무를 보던 검찰서기라는 말이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였었는데, 그런 의미로 ‘서기’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더 높기는 하다.
검사실에서 근무하면서 사건 관계인들로부터 “이 양반아!”, “아저씨!”, “병신 새끼” 같은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말들을 했던 사람들은 조사과정이 아니라 전화상으로, 그것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매우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검사 처분에 대하여 민원 형식으로 강력히 항의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말을 내뱉은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기분이 잠시 언짢기는 했을지언정 크게 당황하거나 화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검사실에서 참여 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조사나 민원 처리를 하면서 사건 관계인들로부터 이런저런 호칭으로 불린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사실, 검사실에서 근무할 때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불리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피의자, 참고인 등 사건 관계인 조사를 제대로 해서 범죄 혐의를 밝히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 수사관의 본연의 임무이고 본질인 것이지 그를 표현하는 호칭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검사실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수사관들이나 잠깐 호칭에 일희일비할 뿐 대부분의 수사관들은 수사하면서 자신이 뭐라고 불리든 묵묵히 조사하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근무하면서 이렇게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직업이 대한민국에서 검찰수사관 말고 또 있을까?’라는 생각 그리고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현상이 권한이나 지위가 정립되지 않는 검찰수사관의 취약한 위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에 글로 표현해 보았다. 변호사로 나와 일을 하다 보니, "오로지" 변호사라고만 불리게 되어 그 점은 참 심플하고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