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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19. 2021

명예훼손과 모욕 사이

 명예훼손과 구별되지만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종종 헷갈려하기도 하고, 명예훼손과 혼용하기도 하는 모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모욕은 명예훼손과 달리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없이’ 사람에 대하여 ‘경멸의 의사나 감정을 표현’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일체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 방법이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그림이나 거동 등에 의한 방법으로도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인분을 퍼붓거나 재수가 없다고 소금을 뿌리는 행동 또는 욕설의 의미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행위가 거동에 의한 모욕의 예이다.    

 

 모욕은 추상적인 경멸의 의사나 감정을 표현하면 되므로, ‘병신 같은 놈’, ‘저 망할 년’, ‘쓸개 빠진 놈’ 등 우리가 흔히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표현들이 일반적으로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요즘에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비하나 조롱하려는 대상에 벌레를 뜻하는 충(蟲) 자를 붙여서 모욕하는 경우가 많다. 진지충, 설명충, 급식충, 맘충, 틀딱충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적시 여부에 의해 명예훼손과 모욕을 구별한다고 해도, 실무상 항상 명확하게 양자가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판례 사안 중에는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이 들어가서 잘 운영되어 가는 어촌계를 파괴하려는데 주민들은 이에 동조 현혹되지 말라.’고 마을에 방송을 한 것이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되는지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다. 명예훼손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므로, 위와 같은 표현이 명예훼손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입장이었다. 다만,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이라는 표현은 모욕적인 언사로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모욕죄는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앞에서 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보다는 형이 낮은 편이다. 실제로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를 하더라도 벌금으로 약식 기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두 범죄 모두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 본인이 이에 대해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의사를 중시해서 처벌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이 되어 있다.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은 가능하지만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의 형태로 규정이 되어 있다. 그래서, 수사 중에 당사자 간 합의가 되고 처벌불원서 등이 제출되면, 검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게 된다.          


 한편, 수사환경이라는 관점에서는 명예훼손이나 모욕 범죄 수사가 예전에 비해 훨씬 용이해진 측면이 있다. 인터넷이나 SNS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언사가 주로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행해졌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 앞에서 직접 말을 하든 가해자가 다른 사람과 있는 장소에서 피해자에 대한 험담을 하든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말을 전하는 형태였다. 



 한 번 내뱉어 버린 말은 순간 증발해 버리고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말을 했다고 의심받는 사람이 그러한 말을 진짜로 했는가가 다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말을 진짜로 했는가 안 했는가를 밝히기 위해 그 말을 들었다는 사람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를 하기도 했다. 사람을 불러 조사를 해도 ‘어떤 말을 했니, 안 했니’, ‘들었니, 못 들었니’, ‘직접 들었니, 전해 들었니’ 이런 이야기들로 한참을 싸우다가 결론을 못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피의자와 고소인이 어떤 집단이나 단체에 속해 있고 그 내부에서 각 피의자나 고소인을 따르는 무리가 있는 경우에는, 검사실에 와서도 각자의 무리나 파벌의 자존심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게 틀림없이 맞다면서 버럭버럭 우기기도 하고 상대방과 고함을 지르며 싸우기도 한다.     


 반면에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행해진 명예훼손이나 모욕적인 발언은 증거가 박제되어 있으니, 사람을 불러서 악다구니 쓰는 것을 듣지 않아도 되니까 참 좋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진 것은 한 번 내뱉은 말과 달리 삭제를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캡처 형식으로나 서버에 증거가 다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을 통해 복원이 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범죄 수사가 한결 편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형량이 낮든 합의가 되어 고소취하서를 제출할 가능성이 있든 증거보존의 용이성으로 수사가 쉬워졌든,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그만 봤으면 하는 생각이 한 적이 여러번 있다. 범죄와 범죄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어떤 범죄든 달가운 것은 없지만, 명예훼손에 관한 범죄들은 비슷한 법정형이 규정되어 있는 여타 범죄에 비해 피해자의 정신까지 갉아먹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수사하는 사람, 변론하는 사람의 정신도 덩달아 훼손되는 느낌이다. 아마 헛된 바람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버 공간은 계속 확장될 것이고, 그럴수록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언사들이 난무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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