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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23. 2021

미국 수사기관에 전화 건 사연

 검찰 생활 내내 주로 검사실에서 근무하였지만, 조사과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조사과는 검찰청 내에서 경찰서의 수사과 경제팀, 지능팀 같은 기능을 하는 부서라고 이해하면 된다. 고소장, 진정서 하나에서 시작하여 고소인(진정인) 조사, 피고소인(피진정인) 조사, 필요한 경우 대질조사 및 기타 증거 확보 등의 수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여 검사실에 송치하는 것이다. 


 조사과에서 근무할 때 배당받은 진정 사건을 처리하면서 생긴 일이다. 진정인은 당시 30대 후반의 여성이었고, 진정서 내용은 ‘오랫동안 불상(不詳)의 사람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으니 가해자를 적발해서 처벌해 달라.’는 취지였다. 진정서가 중언부언에 두서없이 쓰여 있는 데다가 스토킹 등 범죄로 특정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진정 내용 중에 자신의 페이스북 아이디가 해킹당해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디로 페이스북 접속을 한 흔적이 확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이는 입증만 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정보통신망 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페이스북 사이트의 서버가 미국에 있어 행위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정인이 진정서에 자신이 이에 대한 협조를 해주겠다고 한 미국 FBI 수사관 한 명과 통화를 하였고 이메일도 주고받았다면서 그 수사관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기재해 놓은 것이 있었다. 


 사실, 미국 FBI 수사관이 한국의 수사기관도 아니고 한 명의 개인에게 그와 같은 협조를 약속한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고 진정서에 기재되어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은 먹었지만 무척 긴장이 되었다.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기는 했어도,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네이티브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할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사전에 현재 상황이나 요구사항 등을 준비하고 메모를 해 놓긴 했지만, 대화가 내가 준비한 대로 흘러가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몇 차례 물을 마시고, 심호흡을 한 뒤 사무실 전화기를 들었다. 

 

“The number you have dialed is wrong number.”


 꽤 오래전 일이라 안내 메시지의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때도 리스닝의 한계로 정확한 표현은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안내 메시지는 대충 “잘못 걸었다.”는 취지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그때까지의 진행상황을 보고서로 남겼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수사한 바로는 진정인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접속한 제삼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진정인을 불러서 진행된 사항을 설명 해 주려고 하는데, 약 5분 정도 지났을 때 진정인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네요.”라고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 영어 준비도 많이 하고, 얼마나 많은 품을 들이고 노력을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니! 진정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그렇게 표현을 했을지 모르지만, 다소 억울한 감정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수사기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워낙 많이 겪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하게 된다. 어쨌든 그동안의 수사 진행과정을 해당 진정사건을 수사 지휘하던 검사에게 보고하고 해당 사건을 ‘공람종결 처분’을 했다.



 제목에서 ‘미국 수사기관에 전화 건 사연’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사실은 미국 수사기관에 전화를 걸진 못했다. 미국 수사기관에 전화를 했을 뻔했는지는 몰라도. 참고로, 만약 실제로 미국 수사기관에 연락이 되었다면 이후에는 대검찰청 국제협력단 등을 통해 정식의 수사협조로 수사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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