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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06. 2021


피의자 /피고소인 / 피고인 / 피고?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전 사람들이 귀가 밝은 이유?’라는 제목의 유머 글을 본 적이 있다. 대전의 어느 버스 노선에 【서대전육교 – 서대전역네거리 – 서대전네거리 – 서대전네거리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있다고 한다. 정말 주의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엉뚱한 정거장에서 내려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와 비슷하게, 수사기관이나 법원과 친하지 않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하는 용어들이 있다. 바로, 피의자, 피고소인, 피고인, 피고와 같은 말들이다.  



 

  먼저, 피의자는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을 뜻한다. 재판이 아니라 수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피의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용의자가 있는데, 언론에서는 이 용의자라는 말이 피의자보다도 더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용의자는 “일단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의심은 되지만 수사기관에서 정식으로 조사를 받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후에 수사를 거쳐 입건이라는 절차를 거치면 비로소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되는 것이다.

  피의자는 그 용어의 말 그대로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용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호칭 자체로 자기를 죄 있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 도중에 피의자라고 부르면, “아니, 내가 왜 피의자예요? 나는 사기 친(횡령한, 명예훼손 한, 훔친... 등등) 적 없는데.”라는 식으로 거칠게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고소인은 검사나 검찰수사관이 고소인과 피의자를 대질 조사하면서 “피의자는 이쪽에 앉으세요.”,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고지해 드리겠습니다.” “피의자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등등 조사 전후로 또는 조사 도중 피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이미 검사나 검찰수사관이 자기편이라는 착각을 하고 더 의기양양한 태도로 조사에 임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피고소인은 문자 그대로 “고소를 당한 사람”을 의미한다. 피고소인은 객관적으로 고소당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불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고소인이 “범죄 혐의가 있음”을 의미하는 피의자보다는 덜 불쾌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그래서, 나도 고소를 당하기는 하였지만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보이거나 고소인이 다소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을 조사할 때에는, 피의자라는 용어보다는 피고소인이라는 호칭을 더 자주 사용했던 것 같다.  


  피고소인에서 ‘소’ 한 글자가 빠진 피고인은 전혀 다른 개념의 용어가 된다. 검사가 조사 등 수사결과를 토대로 피의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을 하면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절차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것을 “기소(起訴)” 또는 “공소제기(公訴提起)”라고 한다. 기소가 되면 해당 사건은 수사기관인 검찰청에서 재판기관인 법원으로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피의자는 피고인으로 신분전환이 되고, 그때부터는 형사소송에서 검사와 대립되는 당사자가 되어 검사의 공격을 방어하는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피고는 “민사소송에서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 대립하는 당사자”를 의미한다. 피고에는 당사자 간에 민사적인 분쟁을 다투는 민사소송에서 하나의 당사자를 뜻할 뿐 부정적인 의미가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피고인과 같이 이 용어도 나쁜 사람의 의미인 것으로 오해하고 아무 죄 없는 자신이 피고로 불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간혹 “피소”라는 말도 쓰이는데, 이는 조금 애매하다. 한자로는 被訴라고 쓰지만 이것이 고소를 당했다는 것인지 소송을 제기당했다는지 분명하지 않다. 또, 소송이라면 형사소송인지 민사소송인지 아니면 둘 다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언론에서 피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예를 보면, 고소를 당한 것도 피소라고 하고 있고 민사, 형사 불문하고 소송을 제기당하는 것도 피소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즉 혼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본 피의자, 피고인, 피고 등은 형사소송법 등에서 사용하는 법률용어이지만 피소인이라는 말은 없다. “피소”는 고소나 소송을 당함을 뜻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이해된다.  

  

  

  피의자, 피고소인, 피고인, 피고 이런 용어들은 조금 헷갈리기는 해도 일반인들도 대략의 의미는 추측 가능하기라도 하다. 반면, 일반인들이 "시한부 기소중지"나 "약식명령"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검찰,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인 법원이 일반인들을 위해 중요하고 어려운 법률용어를 홈페이지나 팸플릿 등에 풀이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통해 국민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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