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나에게는 '외국'이라면 항상 유럽이었다. 그 가깝다는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의 어떤 국가도 가 본 적이 없다. 한 집 건너 있다는 ‘미국 사는 먼 사촌’은 우리 집에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 중 나만 유독 미국에 가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이게 정말 나와 인연이 없어서인지, 가 볼 기회가 없던 것인지, 아님 가볼 생각이 없던 것인지 나도 헷갈렸다. 결국 나는 유럽 대륙과 한국 땅만 밟아봤다.
인연이 되어 유럽에 갈 때마다 왠지 한국사람을 비롯한 아시아 사람들은 이상하게 의식적으로 피해 다니곤 했다. 아시아에도 많은 나라들이 있는 걸 유럽 사람들이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각보다 좋은 나라이니 무시하지 않았으면 하면, 쓸데없는 염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행 때마다 식사에 대해서 항상 빠듯한 비용을 생각해서인지 한국식당에 갈만한 경제적 여유는 잘 없었다. 대부분 음식에 대한 향수병이 도지면 태국 음식이나 베트남, 중국 음식 등을 찾았었다.
예전 배낭여행을 다닐 때 유스호스텔에서 단체방을 쓰며 아시아 사람들을 만날 때도 그랬다. 체크인 때 나에게 물어보면 난 다른 방을 원한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눈인사를 할 정도의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나이가 어렸다는 말로 대강 퉁치고 잊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사실 그건 자격지심이었다. 이게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정확히 찾으려면 아마 심리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나도 이 ‘세련되지 못한’ 생각들의 정체를 모른다.
한국 사람들과 몰려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정말 그래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피해 다녔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일쑤였고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정작 내 앞에 있는 누군가보다 남을 더 신경 썼다. 그래서 항상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다. 나와 주변 모든 인물 중 나를 포함해 그리 어른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철없는 사회생활에 상처 주고 상처 받는 관계는 많이 지치게 했다. 아이처럼 어른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했다. 어른스러운 사람을 닮아야 했다.
서른 중반을 지나며 외부적인 변화가 생겼다. 가장 절친하게 지냈던 학교 후배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난 뒤 절박하게 변화를 찾았다.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만으로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조심조심,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더욱 조심하고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새로운 습관과 친해지려 노력하다 보니 꼭 내 주변 인물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갖는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좋은 말로, 남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할로 베를린(HALLO BERLIN, 지은이:전세나)'이란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책에 소개된 베를린 속의 작은 태국에 대한 정보를 봤다. 베를린의 서남쪽에 위치한 프로이센 공원(Preußenpark)에서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야외 음식 재래시장과 같은 곳이다. 4월부터 9월까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각종 태국 음식 및 베트남 음식을 만나 볼 수 있는데 그 행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주문을 하면 바로 조리를 시작하는 그 신선도는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낫고, 가격은 아주 싸진 않지만 그래도 신선도와 분위기를 생각하면 비싸진 않은 편이다. 가족단위의 소풍, 데이트하는 연인, 친구들 모임까지 연령대나 사람들의 국적도 아주 다양하다. 난 꽤나 오랜 시간 그 근처에 살았음에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 몇 직장동료들과 잡담 중에 몇 번 언급되었던 그 공원이 이 공원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살짝 찾아보니 태국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향수병을 달래려 일요일에 공원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던 것이 커지고 커져 지금의 규모가 됐다고 한다. 아마도 베를린에 적응하던 사람들일 테니 가족이 늘고 친구들을 부르고 하며 규모가 조금씩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꼭 이 장소가 아니라도 주말의 화창한 날씨에, 소풍과 그릴이 허용된 공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나름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분위기를 보면, 사실 이 행사가 아주 놀랍거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 주체가 태국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의 음식을 다양한 분위기로 판매한다는 점 등이 흥미로웠다. 얼마 전 어느 한국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본 미국의 '푸드트럭'과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과 달리 '트럭'이라는 기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판을 널고 음식을 바로 조리해 판매하는 것이 한국의 재래시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절차상으로는 누구나 등록하면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하니 태국 음식뿐만 아니라 베트남 음식, 심지어 한국 음식까지 맛볼 수 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행사가 매주 열리려면 베를린 시도 협조를 해야 하고, 방문하는 사람들도 열려 있어야 한다. 잔디밭을 배경을 심지어 한쪽에선 타이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공원 전체가 주말에는 아시아의 색깔을 입는 셈이다. 왠지 부럽기도 하고, 심리적 안정감도 느꼈다. 나와 같은 다수의 외국인들이 한 곳에 모여 화창한 햇살에 주말을 즐기는 그 모습이 유난히 보기 좋게 느껴졌다. 아시아 사람들 피해 다니던 그때의 나였다면, 아마 이곳에는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화창한 봄이 시작되는 시기가 왔다. 그러나 금년은, 유난히도 한가하고 답답한 봄을 지내게 될 것 같다. 햇빛이 쏟아지는 타이 파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얽혀, 함께 음식을 나누며, 지겹도록 여유로운 주말의 일상을 하루빨리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