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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건 한 순간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은행 계좌를 열고, 핸드폰을 개통하고, 주소 등록을 하고 등등 수많은 행정적 처리를 위해 독일어의 'ㄷ'도 모르는 나는 항상 주변의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게 익숙해지고 습관처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즈음, 더 이상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에 해결해야 할 자잘한 일들은 널려있었다.


한 번은 핸드폰 요금과 관련해서 대리점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일부터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걸리는 멀리 시내 중심가에 있던 큰 대리점으로 갔다. 급하면 떠듬떠듬 영어로라도 떠들어야 한다는 작정이었다. 동네보다는 아무래도 시내에 나 같은 외국인들이 더 많이 들르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난 핸드폰으로 사전을 수십 번 찾아가며 글씨를 써가며 소통해야 했다. 긴 시간 후 목적을 달성하고 혼이 나간채로 대리점을 빠져나왔다. 나와 마주 보던 직원은 물론 뒤에 기다리던 사람, 같은 매장에 있던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두 창피했다. 그래도,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이것도 하나의 성향이라면 맞다. 정면 돌파를 선호하는 편이긴 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피한다고 없어지지 않고 지금 곤란하면 나중에도 곤란하고 지금 창피한 건 나중에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미룬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면 곤란하고 귀찮아도 당장 해 버리자는 편이다. 사실 나의 일상에서 창피함을 가장 자주 느끼는 공간인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곤란한 순간이 뻔히 보이지만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다면 최대한 담담하게 지나가고 싶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나에게 가장 민망한 순간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인정이었다. '저는 못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창피하다고 느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도, 싫은 것을 좋은 척하는 것에도 솔직해지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나는 '민망함'이라는 표현을 찾았다. 에둘러 표현하기 적당하게 느꼈기 때문일까. 대리점의 직원과 꽤나 긴 시간 동안 본의 아니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 못 알아들은 것은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을 부탁하고 그래서 정확한 판단을 해야 서로에게 좋은 것인데. 거기서 '에이 민망하게 또다시 얘기해 달라고 해?'라고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순간을 일부러 비껴간 것이다. 국어사전을 굳이 찾아보니 민망하다는 표현은 '보기에 답답하고 딱하여 안타깝다.' 혹은 '낯을 들고 대하기가 부끄럽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니 뭐가 그리 민망했는지 싶다. 그렇게 보이게 답답하고 딱하여 안타깝지도 않았고, 낮을 들고 대하기 부끄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뒤로 난 한 번도 핸드폰 요금을 바꾸지 않았고 그 회사와 집의 인터넷이니 등등으로 오히려 계약들이 늘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그 뒤로 난 조금 더 당당하게 대리점에 간다. 그리고 이제는 모르는 것, 못 알아 드는 것 등에 개의치 않는다. 다 이해하고 제대로 사인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민망한 건 한 순간일 뿐, 현실은 계속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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