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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락처를 삭제하시겠습니까?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모든 연락처를 삭제하겠냐는 저 질문은 한 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핸드폰으로 문자와 통화만 하던 시절, ‘전화번호’라는 여러 숫자의 조합이 인간관계를 연결시켜줬다. 물론 아주 자주 사용하는 번호는 키보드를 위를 습관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엄지손가락만으로 충분히 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왜 저장되어 있는지 모르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번호를 잃어버리는 것은 왠지 모르게 겁이 났다. 어린 시절마저 흐릿한 동창의 번호부터 여러 업체에 견적을 맡기며 획득한 전화번호, 나는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은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번호, 심지어는 불편하지만 차마 지우기는 애매해 굳이 남겨둔 사람의 번호까지.


예전 한국을 떠나 마드리드로 향할 때, 내가 쓰던 번호를 아예 폐지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관리를 맡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괜찮은 번호라며 주기엔 혼란의 여지가 있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번호는 pdf버전으로 변환하여 그 뒤로도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다. (좀 슬픈 얘기지만 그 뒤로 010 번호가 의무화되며 이 마저도 휴지조각이 됐다.) 그 뒤로 한국에 갈 때마다 누군가의 번호를 빌려 연락을 하거나, 주로 부모님의 핸드폰, 혹은 임시로 마련한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정성이라 부를 수 있다.


친구가 출국 후 오랜만의 통화에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쓰던 번호로 통화를 눌렀다가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메시지에 먹먹했다고 했다. 이렇게 가깝고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야 전후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수년만에 연락한 사람은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 뒤로 여러 해가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연락이 끊긴 사람은 언제건 끊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지 그 시기와 그 사건이 겹쳤을 뿐, 언제 오더라도 정리의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전화번호라는 개념마저도 바뀌어 가고 있다. 인터넷 전화가 활성화되며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전화번호를 굳이 몰라도 연락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화상통화 서비스가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가는 듯하다. 가족, 친지와 원래 멀리 떨어져 살던 우리 가족의 경우는 진작부터 보이스톡이나 페이스톡을 이용했지만 아직도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굳이 왜 스카이프 같은 형태로 서로 안부를 물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많은 문서들이 출력된 편지의 형태로 통용되는 독일은 더 그럴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자주 등장하던 공익광고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사회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와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면 언제든, 어떤 형식으로든 누군가와 연락을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카카오톡은 분명 개인과 개인의 소통의 형태를 21세기에 맞는 형태로 진화시켰다. 그러나 언제 들어도 반가운 사람과의 카톡방이 있는 반면 허공에 메아리만 울리는 단체 카톡방도 있다.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을 어찌 모두 가늠할 수 있을까.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다. 어떤 안부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소통하기가 쉬어져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최근까지도 새해가 되면 은행이니 기업 등에서 뿌려대는 대부분의 다이어리의 한 부분엔 아직도 전화번호란 형식의 종이가 같이 인쇄되어 나온다. 아직도 누군가는 종이에 펜으로 번호조합의 연락처를 스스로 쓰는 것은 선호하거나 좋아한다. 반면 20대의 누군가는 그런 문화를 아예 모를 수도 있다. 심지어 한 지붕에 함께 살 수 있는 이 사람들의 급격한 인식의 변화는 단순히 세대차이라 말하긴 힘들다. 같은 마음이 다르게 표현되는 이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앞으로 수년 후의 '연락처'라는 개념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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