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복학 후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입대 전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해 받을 수 있는 학사경고는 모두 소진해 버린 상황이었다. 그렇게 날려버린 시간을 복학과 함께 오롯이 메워 넣어야 했다. 전공을 선택할 당시 건축공학과는 인기 있는 학과가 아니었다. 대기업에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전공이 인기가 많았다. 나는 성적이 엉망인 탓에 선택의 폭이 아주 좁기도 했고, 학기를 더 미룰 수 있는 여유도 없었고, 어릴 적 그림을 좀 그렸다는 탓에, 건축공학과를 선택하기로 했다. 후에 천천히 깨닫게 된 것이지만, 내가 선택한 전공은 '건축'보다는 '공학'이란 단어가 많이 강조된 듯한 그런 학과였다.
그렇게 과를 정하고 몇 살 터울의 선후배들과 수업을 같이 듣기 시작했다. 군대로 인해 그나마 안면이 있던 입학 동기들은 뿔뿔이 각자의 시간으로 흩어지고 모르는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학교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선후배'문화가 강했다. 나이보다 학번이 먼저였다. 처음엔 너무나 옛날이야기 같은 상황에 동공 지진이 자주 일어났지만 자연스레 '으레 그런가 보다'하고 자연스레 익숙해지게 됐다. 그 시기에 수업을 같이 듣기 시작한 친구들과 졸업 전까지 수년 동안 동고동락을 했다.
대학교 건축설계실이란 공간은 학생들이 워낙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보니 언뜻 보면 사람이 사는 공간 같다. 한편에는 빨래 및 샤워 도구들이 널려 있고 한편에는 만들다만 모형들이 굴러다니고 한편에는 침구류들이 널러있다. 다행히 식사가 끝난 뒤 식기는 설계실 문 앞에 내놓으니 그릇은 항상 복도에 놓여있었다. 그렇게 한정된 공간을 1년여간 나눠 쓰다 보니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게 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고, 그 공간에서 설계수업 준비도 하고, 시험공부도 하고, 틈틈이 옆의 사람들과 공모전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아봐야 아래 위로 두어 살 까지 차이나는 그 사이에서 '학번'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은 좀 어리석었다는 생각도 든다. 뭐 물론, 그렇다고 딱히 무릎을 탁 치는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을 떠나 유럽에서 학교도 기웃거려보고, 직장에도 기웃거리며 한국과 다른 가장 부러운 문화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호칭이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나이를 묻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부르니, 무언가 계기가 있어 나이를 확인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나이를 모른다. 더 정확하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상대방의 나이, 그거 알아서 뭐하지.
'나이'라는 기준이 그렇게 절대적일까. 나이가 꼭 동갑이어야만 친구가 되는 게 아니라면 원래 기존의 관계도 바뀔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원래 알던 선배에게 '우리, 이제 친구 하자.'라고 이야기할 용기는 나도 없다. 그냥 인간관계에 유동성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다 보니 7년째 다니고 있는 지금 사무실에서도 줄곧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어떤 누군가가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게 그렇게 거슬렸다. 왠지 나는 상대방에서 반말을 해도 되고 상대방은 안될 것 같은, 그 느낌적인 느낌이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어차피 사장 이하 모든 직원이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마당에 말이다. 관성이란 게 이렇게 참 무서운 것인가 보다. (물론 대놓고 '너' '당신'이란 du를 살짝 자제해서 이야기하는 센스가 필요하긴 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선후배 문화에서 지낸 나도 스스로 그 습관들을 몸속에서 걸러내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달 첫 출간 후, 백만 년 만에 올린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후배 J가 연락을 해왔다. 그와도 설계실에서 알게 된 사이다. 알고 지낸지는 참 오래됐으나 친밀하게 무언가를 함께 한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함께한 추억의 배경 시간들이 좀 깊이가 깊다. 내가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그가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좁은 방에 그와 함께 1주일 정도 머물렀던 것 같다. 내가 퇴근을 하고 길고 긴 여름날 저녁, 산책 삼아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으며 수다를 떨던 기억들이 깊이 남는다. 그 전에도, 그 뒤로도 한국에 갈 때 한 번씩 보곤 했으나 그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 동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는 그를 처음 만났던 20대 초반으로만 기억하지만 그도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구나.
우리가 평생 쓰는 시간에 비하면 몇 살 차이가 참 작게 느껴진다. 특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사람들을 보며 특히나 더 그렇게 느낀다. 어느 드라마 장면처럼, 나도 J에게 그냥 친구지 뭐, 이렇게 이야기할 날이 올까. 에이 설마 그래 놓고 뒤돌아서서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