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아마도 94년 즈음, 내가 중학생 때였나 보다. ‘김일성 사망’이라는, 신문 첫 장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의 대문짝만한 글자가 헤드라인으로 등장했었다. (물론 한자로 쓰여 있었다.)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10대의 나에게도 그 헤드라인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가족, 학교 선생님, 학교 친구들 등등 나의 작은 세상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더더욱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매일 밤낮으로 텔레비전과 신문 등 언론에서는 그와 관련된 소식들을 쏟아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무슨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등등 중학생이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은 부탄가스와 라면, 건빵 등등을 ‘사재기’ 했다. 마치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긴장감이 집이며 학교를 감쌌다. 친구들끼리는 이제 곧 전쟁이 나면 우리도 싸우러 가야 하냐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안방 옷장과 천정 사이에는 라면 박스들이 빼곡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결국 그 라면들은 천천히 나와 가족들이 다행히 모두 소비했다.) 그 짧은 며칠 사이의, 뭐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더 불안했던 그 찝찝한 기분은 정말 싫었다.
그냥 일상에 계속 집중을 해야 하는지, 고개만 돌리면 모두가 수군대는 그 이야기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나 최근 베를린에서 다시 한번 그때와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벌써 몇 달째 재택근무를 하는 상황이 농담 같기도 하고 웃기는 연극 같기도 하다. 다들 각자 집에서 진짜 일을 하고 있기는 한 건지, 다들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커피 마시며 마주치던 사람들이 없어지니 어딘가 모를 공허함도 느껴진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 매일 출퇴근을 하던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많은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있어 도리어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집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집에만 있으니 안전하다는 생각을 해서일까, 문밖의 태풍이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동안,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창구는 마트와 산책이었다.
5월 초를 기점으로 독일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규제들을 하나둘씩 완화하고 있다. 문밖에 나가는 것만으로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며 긴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온몸은 조금씩 조금씩 긴장을 풀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다 당황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지 않게 서로의 일상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예습이 끝나가는 모양이다. 길에서 만난 누군가와 어리둥절해하며 열심히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도 며칠 만에 적응하게 된다. 제한된 실내 공간을 제외하곤 마스크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물론, 4월과 같이 확진자가 급격히 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규제를 완화한 뒤 불과 1주일 정도나 지났을까. 한국의 신규 확진자 급증 상황이 이곳에도 보도가 되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신규 확진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중이다. 이게 맞는 방향으로 가는 건지 계속 긴가민가 하다. 우리는 여전히 어디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지금 이 상황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일상 에너지의 일부분을 예정에 없던 곳에 써야 하는 것이 사람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이 상태가 겨울이 지나야 진정된다고 하고, 어떤 이는 1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오늘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그 불안감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 같다. 코로나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이야기. 사람과의 관계도, 사회와의 관계도, 그 속의 수없이 얽혀 있는 우리 일상의 다양한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감이 오지 않는다. 겪어보지를 않았으니 전혀 알 수 없었던 몇 달의 상황과 동일하게 말이다.
이제 내일이면 6월, 그리고 1일은 휴일이다. 이번 연휴가 지나면 다음 공휴일은 10월이다. 연일 2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에, 연휴라는 것 만으로도 이번 연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불안감이 팽배하다고 해서, 낭비해도 되는 순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고민을 한다. 대신 계속 바뀌어 가는 '오늘'의 정의에 적응하고자 부단한 생각들이 좀 피곤하게 할 뿐이다. '만약 내일이 없다면 오늘이 무슨 소용인가'로 귀결되는 단단한 매듭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끝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몰고 다닌다. 그때마다 느껴지는 우울한 기분 대신, 그냥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긍정적인 행동으로 그나마 떨어진 감정의 텐션을 올리는 편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