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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넷플릭스 시리즈 '다크' 리뷰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시청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아이디를 아내에게 공유해준 고마운 친구의 배려로 우리 부부는 거의 매일 밤 참 열심히도 넷플릭스를 본다. 특별한 할 일이나 마감이 없는 한, 아기가 잠든 저녁에 꾸준히 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꽤나 많이 들여다봤다. 수많은 넷플릭스의 콘텐츠 중 독일에서 만들어진 시리즈를 재미있게 본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기도 하고 미처 모르고 있던 베를린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이 좋다. 상상력이 더해진 독일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베를린의 개들(Dogs of Berlin, 2018)'을 본 우리에게 인공지능은 또 다른 넷플릭스 독일 콘텐츠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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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저도 어둡고 축축한 '다크'는 많은 상상력이 동원된 만큼 열심히 집중해서 봐야 하는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감히 이 시리즈를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시간여행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흥행에 성공한 시리즈들이 그렇듯 주제는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태까지 공개된 2개의 시리즈, 20시간에 가까운 장면들로 전해 듣는 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과 사건들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빠져드는 것이 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들은 묵직한 것들이 많아서 시청자로 하여금 되뇌게 만드는 힘이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빈덴'에서 10대 아이들이 연속으로 실종된다. 단순한 실종사건이나 강력사건으로 비치지만 모든 일들은 원자력 발전소 근처 동굴과 깊은 연관이 있다. 몇몇 아이들의 실종 장소이기도 하며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 나이 많은 주민들도 있다. 이에 경찰 및 주민들은 이 동굴에 의심을 품고 단서들을 모으지만 모두 단편적일 뿐, 전체 그림은 누구도 보지 못한다. 그러던 중, 정체 모를 외지인이 등장한다. 범상치 않은 중년의 사내는 마을의 한 호텔에서 묶으며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하다.


극 중 주인공인 '요나스'의 아버지는 자살을 한다. 이 사건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의 자살과 함께 마을의 아이들이 실종되고 몇십 년 전 실종된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아버지의 유품을 살펴보던 '요나스'는 원자력 발전소 근처 동굴의 지도를 발견한다. 누군가가 기록한 듯한 그 지도에는 '표시를 따라가라'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그에게 의문의 외지인인 중년의 사내가 소포를 보낸다. 맞다. 그는 요나스의 모험을 돋는 역할을 한다. 그는 왜 요나스를 돕는 것이며 요나스는 어디로 갈 것인가?


드디어 '타임머신'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33년을 주기로 극 중 배경인 2019년을 배경으로 1986년, 1953년이 등장한다. 시간 배경은 시즌 2에서 더 다양해진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각 시간 배경별 배역들을 연결해야 하므로 사실상 극 중 인물을 몇 배로 많아진다. (유년시절 요나스, 현재 요나스, 미래의 요나스 등등). 물론 과거의 현재, 미래의 동일인물을 상징하기 위해 정말 기가 막히게 캐스팅이 되었다. 연령대는 다르지만 배우들이 상당히 닮아있어 시청자가 연관 지을 수 있다.


설정된 배경이나 사건들은 아주 의도적으로 현대사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2019년에서 33년을 거슬러 올라가 1986년으로 간 요나스가 길에서 비를 맞자 그에게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몰라? 그렇게 비 맞으면 안 돼"라고. 아하 맞다. 하기는 예전 내가 어릴 적에도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는데 그게 체르노빌 사태 때문이었고 그와 연관된 소련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들도 나중에 머리가 커져서야 알게 됐다.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그런 질문을 할 역량이 없었다. 원인은 모른 체 그냥 습관처럼 굳어진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꼬리만 붙잡고 산 셈이다. 그 부분을 극 중 주인공인 '요나스'가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준다.


외국어를 배우는 큰 기쁨 중 하나는 그 언어로 표현된 문학과 정서를 더 밀접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이다. 독일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철학이야기를 꼭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다크'가 친절하게도 많이 찾아준다. 물론, 화면을 보면서 힐끗힐끗 인터넷으로 찾아봐야 했다. ‘아하, 이런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구나’ '아 이런 게 그런 뜻이구나'이렇게 말이다. 니체, 프로이트 등에서 시작한 의미심장한 문구는 장면을 보며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길고 긴 장면들과 생각들을 따라가며 마주하는 질문들은 사뭇 진지하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인가? 진짜는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일까'


넷플릭스의 다른 인기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의 배경도 역시 1980년대이다. 냉전 시대답게 미국과 소련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미묘하게 경쟁하는 구도가 자주 노출된다. '다크'도 비슷한 면모들이 있다. 80년대를 상징하는 듯한 '백 투터 퓨처'가 가장 뜨거운 최신영화로 등장하기도 한다.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설정은 66년 전인 1953년까지 간다. 80년대의 신스팝이 경쾌하게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장면도 있지만 주제가 무거워서인지 대체 분위기가 살지가 않는다. 그중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장면은 주인공 요나스가 처음으로 2019년에서 1986년으로 33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장면이다. 그러나 그의 옷차림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패션이나 모든 게 돌고 돌아서가 아니라 일상의 본질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많이 바뀌지 않아서 일 것이다.


'다크'에는 조금 충격적인 설정들이 있다. 작은 마을에서 몇십 년 동안 얽히고 얽힌 인간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실종된 옆집 아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엄마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요나스는 그가 훗날 자신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실종된 아이의 누나를 사랑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 간의 관계도 복잡하며 사건들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되도록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봐야 그나마 내용들을 따라갈 수 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집중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라면 적극 추천이다.


'다크'는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히 흐르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6월 말에 3번째 시리즈가 방영 예정이며 나는 꼭 한 번에 시청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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