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종로 피맛골은 대학생 때부터 알음알음 다니곤 했다. 굽이굽이 골목 사이로 숨은 식당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인사동까지 한 걸음에 닿곤 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종로구청 근처 청진동 근처를 자주 다녔다. 그러나 일대가 재개발이 되며 좁은 골목 사이사이 자리 잡고 있던 동네 ‘맛집’들은 주변에 새로 빼곡하게 세워진 고층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그중 일부는 청계천 근처 다른 장소로 자리를 아예 옮기기도 했다. 그렇게 ‘피맛골 낙지볶음’하며 떠올리는 추억은 과거에 갇혀버렸다. 시원한 콩나물을 곁들여 먹는 낙지볶음을 즐겨 먹곤 했다. 덥디 더운 습한 여름날, 머리털 사이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매운 낙지볶음을 먹으며 차디찬 소주잔을 기울이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곤 했다.
피맛골로 불리던 종로 일대가 일제히 재개발되는 동안, 그래서 피맛골 낙지볶음이 옛말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한국에 없었다. 퇴근길에 친구를 만나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일상도 나에겐 조금씩 옛말이 되어갔다. 수년만에 서울에 가니 몇 층 남짓하던 골목이 저마다 키를 세워 고층 건물로 변해있었고 그 주변에 남아있는 가게들도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종로 일대가 이미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낙지볶음 골목이 변해가는 동안 나도 변해가고 있었다. 외국에 있다 보니, 매운맛을 접할 기회가 현저히 떨어지다 보니, 그래서 매운 음식을 덜 먹게 되고 덜 찾게 되는 과정을 수년간 지나가 보니, 매운맛이 아리도록 고통스러운 맛으로 변해갔다. 자주 가야 1년에 한 번 정도 가는 서울에서 그런 귀한 음식들을 먹으니 더 이상은 익숙하게 즐기는 맛이 아니었다.
머리는 맛의 기억에 근거해 나의 발길을 이끈다. 이상하게 내 머리가 기억하는 맛은 그대로인데 정작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요리를 먹으면 몸이 받아들이질 못한다. 먹고 싶은 마음은 꽤나 그대로인데, 그래서 오랜만에 기회가 되면 꼭 먹고 싶은데, 먹은 다음 날 고생을 한다. 심지어 이건 김치도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아침을 혼자 간단하게 먹는 일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아침상의 김치가 어색해져 버렸다. 아삭하게 내 입에 꼭 맞는 어머니 김치가 내 속을 아프게 할 줄이야. 그렇게 한국에 올 때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내 식성을 느끼며 깨달았다. ‘아, 기억은 그냥 기억이구나.’
음식뿐만 아니라 그 시기 나의 모든 게 비슷한 변화들을 겪었다. 한국을 떠나온 시간만큼 나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소개를 할 때마다, 그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헷갈린다. 나와 허물없이 지내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리워진다. 세상 어디에서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는데, 나만 마치 점점 더 먼 과거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상하리만치 나의 기억만 내가 떠나온 시간에 떠다녔다. 그래도 설마 매운맛을 못 먹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을 떠날 때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외국어를 배우며, 나에게 익숙한 한국어와 멀어지며 조금씩 말하는 방법도 변해갔다. 나는 신기할 정도로 한국에 가면 여유가 넘치고 친절해진다. 말로 인한 스트레스가 안 느껴져서이다. 매 순간을 듣기 평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사람을 살짝 예민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 조바심이 한국에선 누그러진다. 언어라는 것이 아주 작은 순간의 매개체이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일상이 된다. 여유 넘치는 농담은커녕 이걸 제대로 이해한 건지 긴장을 하고 지내니 마음속 여유는 갈수록 바닥났다. 이런 것 역시 내가 한국을 떠나며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은 많이 봐야 1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다. 친구들은 그건 내가 외국에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나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냥 우리 나이 또래에는 다 그런 거라고 한다. 뭐 어쨌거나 그래도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왠지 서글픈 구석이 있다. 도리어 내가 이따금씩 한국에 가면 그게 친구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계기가 됐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낸 허물없는 친구들과 모이면 모두 다 같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같다. 예전처럼 논다. 그 친구들과,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문득 깨닫곤 한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내가 누군지를 다시 깨닫곤 한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이상하게 나에겐 일상을 살아가는 귀한 에너지가 된다.
오늘의 나와 한국에서의 나는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게 큰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여러 모습의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신라면을 맵게 느끼는 나도, 예전 종로 골목에서 낙지볶음과 계란찜을 좋아라 먹던 나도, 모두 나의 일부이다. 아이가 태어나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이 하나 추가됐다.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아빠’라는 모습이다. 어수룩한 아침,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깨 눈을 비비며 놀아달라는 아이와 멍을 때리는 모습도 나 자신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안되던 나의 모습이다. 아마도 이 아이가 커가며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줄 것이다. 내 가족들이, 친구들이 나에게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