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급한 일이 있을 때 잠깐씩 사무실에 간 적은 있지만 출근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것은 5개월 만이었다. 때마침 덥디 더운 8월의 여름 날씨에 아침햇살은 벌써 뜨거워져 있었다. 오랜만에 시계를 부지런히 곁눈질하며, 아침을 먹고, 씻고, 오랫동안 챙겨 입지 않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아내와 아이에게 출근인사를 한다. 왠지 문을 나서려니 생각이 많아졌다. ‘아 진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집 앞 도로에 서있는 차들을 보니 출근시간처럼 느껴진다. 쥐 죽은 듯이 하루 종일 고요했던 집 앞 도로가 눈에 선하다. 그게 정말이었을까 싶다. 2020년 8월 10일, 우리 사무실은 직무에 따라 일근근무 3일에서 4일, 재택근무 2일에서 1일을 유동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특수한 상황에 의해 아이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경우 등의 예외적인 상황은 있지만 결국 다수의 사람들은 사무실로 복귀했다. 근무시간에 대한 대략의 뼈대는 나름 수긍할 수 있는 선에서 결정된 듯하다. 그러나 개개인 상황에 따라 조금씩 일하는 환경은 달라질 것이다. 어쨌거나 8월 10일 월요일,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출근길에 나섰다.
아직 재택근무를 어떤 요일에 할지 정하지는 않았다. 사무실에 가서 동료들과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게 적절하게 잘 나눠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꼭 어떤 요일을 선호할 수도 있고 그냥 매주 유동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머리에 담은 채 출근길에 나섰다. 지난 몇 달 보아왔던 거리의 모습보다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붐비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교적 마스크는 다들 잘 쓰는 편이다. 햇살은 참 꼼꼼하게도 쏟아진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상쾌한 날씨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전체 근무 인원수를 관리하는 모양이다. 사무실 전체 캘린더를 보니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람들도 꽤 많다. 재택근무 초반, 학교며 유치원이며 모든 교육기관이 일제히 문을 닫았던 때 여러 명의 동료들이 육아휴직을 신청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가족이 하루 종일 집에서 붙어 있어야 하니 일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 싸우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잠시 일을 놓았던 동료들도 보인다. 멀찌감치 떨어져 마스크를 쓴 채 어색하게 안부를 전한다. 서로의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기분이 나아진다.
다들 마스크를 꼈다 뺐다를 반복하며 각자 자리에 앉는다. 마스크로 대부분이 가려진 얼굴 사이로 서로 반가운 눈빛 인사를 건넨다. 사무실 내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이동 중일 때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고 좁은 공간에 촘촘히 있지 말자 정도로 정리가 됐다. 전반적으로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협조해야 하니 마스크는 열심히 쓰고 다닌다. 하긴 이곳은 익명의 장소가 아닌 실명의 장소이니 각자 철저히 지킬 것이다.
재택근무가 출퇴근 시간도 없고 환경도 편하고 참 좋긴 했었다. 우리 집 꼬맹이가 찡찡거리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기는 하지만 그래도 편한 걸로 따지면 몸은 편했다. 특히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더욱 그랬다. 여타 많은 베를린의 사무실처럼 우리 사무실에도 에어컨은 없다. '원래 그리 덥지 않았다며' 핑계를 대던 사람들을 비웃듯 베를린의 여름은 수년 사이 35를 넘나드는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그럼에도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사람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선풍기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특히 내가 앉는 곳은 서향이라, 길고 깊어진 여름 태양에 나의 까만 머리가 후끈 달아오르곤 한다. 다른 무엇보다 '여름 날씨' 이것 하나만으로 나는 재택근무가 더 좋다. 쾌적하게 얼음 동동 띄운 음료를 들이키며 핸드프리로 통화하는 재택근무가 더 좋다.
오랜만에 속옷이 아닌 옷을 입고 앉아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시간이 참 더디 간다. 점심시간도 멀게만 느껴진다. 이 시간쯤 우리 집 꼬맹이가 낮잠 잘 시간인데 아내와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하다. 사실 은근 걱정스럽긴 했다. 나야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컴퓨터 앞에 온종일 앉아 있었기에 뭐 별로 아내의 육아에 도움을 준 건 없지만 그래도 내가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출근 며칠 전부터 아내에게 괜찮겠냐고 되묻곤 했다. 그러나 아내는 줄곧 단호했다. 네가 뭘 했다고 걱정이냐고. 너나 잘하라고. 뭐.. 그래... 그럼 알겠어.
드디어 뜨거운 오후가 됐다. 복귀 첫날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피기의 지난 '베를린 생활일기'참고) 이제 진짜 여름이 됐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https://brunch.co.kr/@bububerlin/69
코로나는 분명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 어떻게 일상이 바뀌어 갈지 모르겠다. 관성대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갈지 아님 새로워진 일상이 정말 새로운 '일상'이 될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이슈가 끊이지 않는 것만 봐도 우리가 원래 '일상'이라 규정하던 규칙적인 삶에 미친 코로나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재택근무니 출퇴근이니 다 좋으니, 다시 새로 무언가에 적응해도 괜찮으니 어서 인류가 코로나를 정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서 이 '불안의 시대'가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