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그렇게 콕 집어 '고소공포증'이라 부를만한 근거는 딱히 없다. 그냥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오금이 저리고 발밑이 따끔 거리는 듯한 그 느낌을 그렇게 부르는가 싶은 거뿐이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처럼 나의 유년 시절을 포함한 지난 시간을 아주 천천히 거꾸로 돌려보면 무언가 이 알 수 없는 공포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땅에서 멀어진 적은 없다. 그러니 나의 경우엔 경험보다 나의 지나친 상상력이 높은 곳을 무섭게 만든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유년시절의 나는 좀 유별나게 상상력이 지나친 편이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 아버지가 출장을 다녀오실 때면 가족들이 전부 김포공항으로 마중을 나가곤 했다. 그때 살던 집이 공항과 가까워서이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공항에 가면 비행기를 꽤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 난 그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마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부모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저 비행기가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공항을 들이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차로 활주로를 달리면 안 되는지 등등. 부모님도 당황했는지 모른 척하시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은근 반복되자 두 분은 나를 염려하기도 했다.
아무튼 상상력이 지나친 아이에게 발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은 항상 섬뜩한 곳이었다. 왠지 내가 밞고 있는 곳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완벽하고 안전하게 지지되어 있는 것인지 불안했다.(이게 불신의 문제인지는 또 다른 영역이다)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할 즈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줄곧 높은 곳을 은근슬쩍 피해 다니던 내가 위 사진 속 공간을 내 발로 걸어서 이곳을 간 건 좀 고무적이다. 처음 최고 높이가 42미터라고 구체적인 숫자를 알게 됐을 때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완만한 경사로 걸어 올라가는 곳이라니 괜찮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결국 궁금해졌다. 이놈의 호기심이 스스로를 또 힘들게 하는구나.
올라가는 동안 발 밑의 나무 사이를 보면 항상 아찔했다. 산에서 더 높은 곳을 오르는 것이니 당연히 바람도 거세다. 그만큼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체감상 '끝도 없이' 올라가는 높이에 다다르자, 그리고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이 발 밑으로 하나둘씩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내가 있는 위치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재 사이사이로 저 밑에 보이는 휑한 곳들이 발바닥에 땀을 내기 시작했다. 왠지 발바닥도 간질간질지기 시작했다. 그때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더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대수롭지 않은 듯 묵묵히 함께 가준다면 그 동행만으로도 두려움은 많이 줄어든다.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현재를 공유하는 것은 두려움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줄곧 내 눈의 시선처리에 신경을 썼다. 내 발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바닥재 사이 틈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몇십 미터 아래는 마주칠 때마다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 번 눈이 마주치면 왠지 그 섬뜩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 차라리 너무 가까운 곳이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바다 위 수평선이나 지평선에 눈 초점을 맞추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 말고, 내 발 밑에 보이는 아찔한 풍경 말고, 내 발 밑으로 요동치는 바로 옆의 나무 말고, 저 멀리서 보일랑 말랑 리듬을 타는 숲이 나의 초점을 편안하게 해 줬다.
사실 이곳은 산책코스로는 아주 훌륭하다. 전체 산책로가 원만한 경사로 계획되어 휠체어 및 유모차가 접근이 용이하도록 배려한 것부터, 매표소에서 출구까지 꼼꼼하게 계획된 동선까지. 여유롭고 길게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보는 건 덤이다. 바움뷥펠파드(Baumwipfelpfad)라는 말 자체가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란 뜻이니 굉장히 상황을 잘 대변하는 이름이다. 비록 난 어린 시절 나무를 오르락거린 기억은 없지만 있다면 이런 비슷한 느낌이겠거니 싶다.
삶이 초점을 가끔씩 저 먼 곳에 맞추는 것이, 누군가와 나의 두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삶’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발바닥이 따끔거리는 듯한 두려움을 느낄 때, 그래서 멀리 말고 바로 앞만 보고 싶을 때, 그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