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여유로운 지난 9월의 여느 금요일 오후, 모처럼의 휴가 마지막 날이었다. 쨍하고 화창한 날씨가 아까워 공원으로 가족이 다 함께 나섰다. 뒤늦은 여름 햇살,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여유로운 사람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 그 사이로, 야외에 듬성듬성 흩어져 홀로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를린의 글라이스드라이에크(Gleisdreieck)공원은 포츠다머 플라츠 근처에 있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역에서 유래한 공원의 이름은 이곳의 지명이기도 하다. 서울로 따지면 ‘삼각지역’ 정도 되겠다. 두 지하철역이 교차하며 생긴 삼각모양의 황량항 대지는 본래 화물을 취급하던 공간이었다. 2014년에 조금씩 모양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이 공원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며 새로 지어진 집들이 빼곡히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다.
대규모로 새롭게 조성되는 도심 속 공원은 여러모로 많은 이슈들을 만들었다. ‘현대사회가 규정하는 공원’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공원이 도시의 어떠한 모습을 담는가, 어떠한 배경이 되는가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공원 곳곳에는 저녁 장사를 위한 푸드트럭들도 열심히 준비 중이었다. 베를린의 핫한 야외공원들에는 으레 푸드트럭들의 공간들이 마련되어있는데 이 공간들이 공원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여유롭게 산책을 나왔다 푸드트럭 앞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 터벅터벅 한가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며 노는 사람들, 여행객들까지. 글라이스드라이에크 공원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부터 그 배경이 되는 공원, 그리고 그 주변까지 다채로운 ‘도심 속 공원’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와 비슷하게 닮아있는 공원 한 구석,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자리를 잡는다. 건너편 커피숍에서 커피도 한잔 내온다. 그렇게 평일 오후의 여유를 즐기며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근사한 장소를 난 왜 모르고 지냈을까.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보며, ‘난 혼자만의 생각을 어디서 어떻게 했었지’라며 반문한다. 결혼 전, 그 많았던 주말의 여유를 난 어떻게 썼을까.
사실 새롭지 않은 저 질문의 답은 나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의 30대의 주축은 ‘일’이었다. 어떻게든, 어디서든 살아남으려 하다 보니 그게 가장 우선순위였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당시 나에겐 ‘부차적인’ 것들이었다. 주관적이니 객관적이니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냥 그랬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좀 후회스럽지만 당시에 나에겐 후회도 사치였다. 그러니 ‘나는 왜 저런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까’라고 반문한다면 그건 곧 ‘그러지 말고 좀 느슨하게 지낼걸’이라는 후회가 된다. 그러나 여유 없이 일만 쫓던 시간이 지금 현재의 초석이 되었으니 과거의 시간을 후회하는 건 반칙이다. 차라리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맞다.
회사 일, 개인 일, 참 일은 이것저것 많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무한도전을 참 열심히 봤다. 차곡차곡 저장해 놓은 파일들을 고이 모셔가서 말없이 틀어놓기도 하고 집중해서 보기도 하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친구처럼 지냈다. 그렇게 주말들이 지나갔다보다.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것들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후회는 보통 후회로 끝나니 그래서 나에게 별로 매력이 없다. 다만 ‘다짐’으로 되새길 뿐이다. ‘앞으로는 그래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지내야지’ 이 정도의 다짐.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와 상관없는 ‘마음의 여유’. 참, 말이 어렵다. 그래서 앞으로 꾸준히 노력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