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2년 7월 9일 연재
코로나 락다운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20년, 우리 부부는 우연히 한 앱을 알게 됐다. 슈퍼마켓이나 식당 등에서 미처 다 소비되지 못하거나 남겨진 식자재를 평소의 1/3 가격 정도로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앱이다. 자신의 위치를 입력하고 원하는 반경을 설정하면 해당 지역에 이 앱과 연동되어 있는 식료품점, 식당, 호텔 등이 안내된다. 앱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업체들의 색깔만큼 그 내용물, 픽업 시기, 픽업 방법 등은 아주 다양하다. 식료품점에서는 야채, 과일 등등 매일매일 소진되어야 하는 식자재들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처리하지 못하면 ‘처분’ 해야 하는 식자재를 불과 몇 유로(한화로 몇 천 원 정도)에 한가득 담아준다. 식당 역시 준비된 만큼 정확하게 판매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렇게 매일매일 음식이 남는 날도 있고 부족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베를린 시내의 많은 호텔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기간 동안 고무줄처럼 들쑥날쑥하는 이용객들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오늘 조식 뷔페를 위해 몇 인분의 에그 스크램블을 준비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다. 그 예측과 실수요 사이를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앱이 바로 '투굿투고'(Too good to go)이다.
'투굿투고'(Too good to go)는 회사의 이름이자 회사를 대표하는 앱의 이름이다. 두 가지 중의적인 뜻을 가진듯한 이 앱의 이름은 '버리기엔 아까워요'란 뜻도 되고 포장을 해 간다는 투고(to go)를 이용해 ‘포장해서 가져가기에 너무 좋아요’란 뜻도 된다. 이 두 가지 모두 이 앱의 목적을 아주 뚜렷하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2015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설립됐다는 이 회사가 2021년 현재 12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가 됐다고 하니 서비스의 팽창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유럽의 대도시는 물론 미국도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하니 언젠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이 앱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사용자가 앱으로 대략의 내용물을 보고 가격을 먼저 지불하지만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식자재의 종류나 양이 다르기에 사용자가 제공받는 형태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대개는 매직백(Magic bag)이라고 쓰여있는데, 매일매일이 식자재의 유통이나 소비 등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제공하는 사람도 내용물을 예측하기 힘들어 '예측하기 힘든 서프라이즈가 포함된' 가방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론 보통 아담한 쇼핑백에 내용물을 담아서 준다.) 한 번은 시내 호텔에서 샌드위치와 과일주스, 요구르트와 기타 스낵들을 받은 적이 있다. 호텔 로비에서 쇼핑백을 건네받기 전까지 뭐를 먹게 될지 기대하는 재미도 있다. (물론 반대로 생각보다 부실한 내용물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 3유로~4유로 (대략 4~5천 원 정도) 정도의 저렴한 비용은 사람 마음을 더욱 넉넉하게 만든다.
식료품의 경우 대부분 ‘유기농’ 식자재를 취급하는 마트들이 많다. 종이 상자에 살짝 시들어가는 야채들을 한가득 받아보기도 했다. 이들 ‘유기농’ 마트가 취급하는 식자재들은 특히나 유통기한이 짧고 빨리 순환을 시켜야 하기 때문인지 상품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식자재는 바로 처리를 하는 듯하다. 갓 밭에서 따온 듯한 흙 묻은 야채들 사이에 가끔씩 유제품이나 기타 다른 가공 음식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호텔 조식’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투숙객들의 조식 식사 시간이 끝나는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직접 호텔 식당으로 들어가 원하는 만큼 직접 선택해서 담는 곳도 있고 호텔 측에서 쇼핑백으로 준비해주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여행객이 거의 없던 어느 주말 아침, 아침 바람이나 쐴 겸, 가족이 차를 타고 시내 호텔로 향했다. 앱을 통해 미리 예약한 도시락을 가지고 주변 공원에서 아침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한가한 호텔 로비로 가 보니 그날은 내가 처음 픽업인 것 같았다. 3유로의 설레는 마음에 도시락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꽉꽉 눌러 담았다. 기분 좋게 나서려는 순간, 다른 남자가 나의 뒤를 뒤이어 들어왔고 내가 이미 쓸어간 뷔페를 바라보며 자뭇 실망해하는 그의 눈빛을 애써 외면한 체 나는 서둘러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작정한 듯 도시락 사이로 햄과 치즈가 삐져나올 정도로 담아냈다. 그도, 그리고 나도, 그날의 아침은 나름 풍성했다. 그 호텔은 조식을 위한 식당 외에 따로 커피나 빵을 파는 공간이 없어 조식을 위해 조리된 식자재가 전부였지만 간혹 각종 빵과 커피 등을 카페의 형식으로 로비에서 함께 판매하는 호텔들은 흡사 커피와 함께 세트로 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코로나 기간 동안 식료품을 몇십 분 내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성행했다. 그렇게 단 시간에 무언가를 배달하는 것도, 배달료를 지불하고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장을 봐준다는 개념도 생소했던 이곳에선, 이 서비스의 등장 자체가 기록에 남을 만한 사건이다. 앱을 통해 생활용품, 식재료, 일상용품 등을 주문하면 30분 내로 배달된다는 이 서비스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코로나 락다운 시대에 빛을 발했다. 처음엔 ‘대신 장을 봐주는’ 서비스로 시작한 듯했으나 모든 마트가 쉬는 주말이나 휴일 등에도 서비스하기 위해 시내 곳곳에 한국의 편의점과 비슷한 형식의 가게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지 않는, 그러나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이 가게들은 커다란 간판 뒤로 배달하시는 분들만 드나들었다.
이 서비스 역시 다른 상점들과 마찬가지로 식자재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게 어느덧 관건이 된 건지 언제부터인가 '투굿투고'에 등장했다. 배달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빠른 순환을 택한 덕에 우리와 같은 사용자가 덕을 봤다. 고릴라(Gorilla)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앱에 등장하기 무섭게 항상 매진이었다. 정말 딱 한 번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매직백을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우유, 음료수, 햄 등은 물론 샌드위치도 들어있었다. 후기를 보니, 식료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이 들은 매직백이 더 알차다고 한다. 그러나 락다운이 조금씩 해제되고 사람들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되자 서비스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더니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 (물론 비슷한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서비스는 ‘코로나 특수’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투굿투고'(Too good to go) 앱에는 ‘기부’(Spende) 기능이 있다. 치솟는 물가가 무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즐기고 있으니 문득 이 버튼에 손이 가기도 한다. 핸드폰과 연동된 카드로 결제되는 식인데 단위는 2유로, 4유로, 6유로, 이렇게 몇 유로 단위별로 되어 있다. 그저 이 서비스를 이용하며 느낀 만족감과 잉여 음식에 대한 인식 정도를 현금 단위로 환산한다는 정도로 생각하려 한다. 그렇기에 가끔 버튼에 손이 가는 데로 ‘팁을 지불하듯’ 누를 뿐, 이 돈의 행방은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잉여 음식에 대한 고민은 오래된 사회의 고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지역의 아이들은 굶고 있고 어느 지역에선 음식뿐만 아니라 뭐가 너무 많이 남는다. 잉여 음식이란 주제 역시 모르면 끝까지 모르고 알면 끝없이 펼쳐지는 수많은 삶의 주제 중 하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가 어마어마한 사명감에 있지 않은 듯, 그저 이 앱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묘사가 ‘우리의 생각’과 비슷한 결인 것 같아서 기꺼이 이용할 뿐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현실적으로는 적절한 서비스의 형태와 가격과 규모를 갖춘 것이 주된 이용 목적이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주말 아침 뭘 먹을까 고민하는 짧은 순간에 종종 들여다볼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작은 놀라움을 기대하며 말이다. 최근 지속적으로 도전 중인 포츠다머 플라츠의 하얏트 호텔 매직백을 지켜보며 말이다.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