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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Dec 02. 2019

‘남편’과 ‘아빠’ 사이 - 현실 육아

by 베를린 부부-chicken

임신과 출산, 육아의 모든 과정은 사실 시행착오다. 특히 첫째 아이에 대한 부모들의 ‘너무나 당연한’ 시행착오가 부모가 되는 과정 중 아주 큰 부분인 것 같다. 아이를 먹이지도, 입히지도, 씻기지도 모르는 부모가 아이의 이 모든 걸 함께 하며 같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 말이다.

우리 아기는 먹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었다. 아내는 브런치에 1편을 통째로 할애할 정도로 이 부분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모유 수유’. 정답이 없다가 정답일 정도로 정말 많고 많은 다양한 사례와 다양한 경우들이 뒤섞인 테마다. 내가 두 달의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가장 극적으로 집안 분위기가 바뀐 지점은, 친정어머니가 가시고 시어머니가 오신 지점이 아니라 바로 모유수유를 중단한 지점이다.
독일에서의 병원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두 개의 큰 덩어리는 임신 기간 내내, 출산 직후, 육아 기간 내내 접하는 모든 매체에서 기준점이 된다. 아내의 경우, 정확히 알 수 없는 극심한 통증으로 모유수유를 중단해야 했다. 아이를 다섯 키운 우리 헤바메(산후도우미)도, 임신 기간 동안 우리를 담당해준 산부인과 의사도, 통증의 원인과 증상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했다. 그저, 그 정도 통증은 항상 있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니 아내가 모유수유를 하며 통증에 아파하는 동안 당연히 본인과 아기, 나머지 가족들도 모두 힘들었다. 정말 사사로운 감정들과 순간들이 부딪히곤 했는데 그것 또한 육아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중, 아이 둘의 엄마인 아는 지인의 빛나던 조언이 잊히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의별 일이  있는데 모유수유도  많은 모레알  하나예요.”


그러고 보면 모유수유를 중단하는 게 왜 그리 대단한 건지, 정말 그 고통을 참아가며 계속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이렇게 예민하지 않게 육아를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등등 아직도 질문 투성이다. 그 모든 질문들을 뒤로하고 나는 아내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단유를 결심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오랜만에 진통제 없이 잠을 푹 잤다고 했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단유의 가장 큰 장점은 아빠인 나도 아이를 먹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시간, 세 시간, 천천히 늘어가는 수유 간격은 하루를 정말 짧게 만들었고 그렇게 길고도 짧은 순간들이 모여 아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흔히들 아이가 잘 때 부모도 같이 자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러기엔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서서히 몸이 힘들고 대화는 점점 없어지며 식사도 기계적으로, 육아도 기계적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아이가 잘 때 자고 싶었으나 빨래를 해야 했고, 설거지를 해야 했고, 청소를 해야 했으며, 장도 봐야 했다. 누군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했다. 장모님이 한국으로 가시고 시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는 정말 장모님 해 놓고 가신 음식을 데워서 먹기만 하는 과정이었는데도 그것도 하기 싫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매일매일 초보 부모들을 향한 육아용품이 장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고 어리바리한 부모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해주는 육아용품은 황홀경과 같은 아우라를 선물한다. 아이의 설거지 그거 얼마나 걸리겠냐고 하지만 그 10분, 20분의 노동을 줄여주고, 아이의 분유 먹이를 편하게 해주는 각종 용품 등은 그렇기에 안 팔릴 수가 없는 것들이다. 내심, 이 분야야 말로 공급과 수요가 '철학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곳이 어딜까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주 한주, 한 달이 지나 아기는 드디어 눈을 뜨기 시작하고 이내 하품도 하고 잘 안 보인다는 시력으로 이제는 어딘가를 응시하기도 했다. 가끔씩 베넷 웃음도 짓고 미소를 짓기도 하며 그렇게 아주 천천히, 천천히 아이는 자라나고 있었다.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아이는 다행히 자라나고 있었다.


많은 육아서적들을 보면 이 시기에 아기가 어떻고 엄마가 어떻고 어떻게 해야 하고 등등 정말 많은 정보들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이것들이 나에게 어딘가 모르는 초조함을 주곤 한다. ‘이 시기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놓치면 안 되는 순간을 놓치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내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를 키우는 게 무슨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판을 깨고 끝판왕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최선을 다하고, 당연히 잘하고 싶지만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도 있고,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도 있으며 심지어 아차 하고 지나가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순간들에 초연 해지는 것, 대신 내가 지금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최대한 많이 자주 말해주는 것. 대신 이런 것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게 아마도 아이에게 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태도인 듯싶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나 아닌 누군가에게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아이가 닮으면 그게 참 힘들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안돼'라는 부정적 표현도 마찬가지고 아이가 눈을 마주치며 놀아달라고 하지만 피곤해서, 아님 혹은 귀찮아서 모른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며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위적인 순간도 마찬가지다.


육아휴직 기간을 돌이켜 보면, 내가 이제껏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건축가’로서의 나 자신은, 2달 동안 없었다. 왠지 그렇게 되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고 내가 그걸 빼면 무언가라는 질문도 가질 만큼 소중하게 생각한 ‘건축’은 ‘아빠’를 앞지를 순 없었던 것이다. 아이의 출생 전, 육아휴직이 시작되기 전에만 해도 '에이... 그래도 두 달 동안 일을 쉬는데.. 짬짬이 책도 좀 보고 그럴 시간이 있지 않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나는 너무나도 냉혹한 현실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특히 어르신들이, '이제 첫째 나았으니 둘째 나으면 되겠네'라고 까르르 농담을 하시면 좀 정색하게 된다. 이 과정을 다시 한번 한다고? 사실 이 부분에는 각 집마다 붙어있는 다양한 명패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이 아이를 잘 키우는데 집중하자"


지금도 우리의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다행히’란 표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아이가 이대로 계속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우리 부부의 바람을 반영하려 일부러 쓰지 않았다. 어제가 그랬고 오늘이 그렇듯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그래서 이 시간들을 먹고 마시고 아이가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제 시작이니, 마치 내가 나의 직업을 대하듯, 육아도 마찬가지로 끝까지 지치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로서 나는 내 삶에서 ‘건축으로 먹고 살기’의 방향이 살짝 바뀌어 가는 지점에 서 있다.


헤바메는 우리 집에 올때마다 이 오래되어 보이는 헝겊 주머니 속에 아이를 넣고 무게를 쟀다. 초반에나 가능하지 아이 무게가 5-6킬로가 넘어가면 힘들다.
우리 아이의 첫 목욕. 생후 17일째였다. 정말 조그마한 신생아는 잡기가 한없이 조심스럽다. 목욕제 대신 그녀는 올리브유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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