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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May 18. 2020

다 때가 있다

by 베를린 부부-chicken

2013년에 개봉된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의 한 부분이다. 마음먹은 시점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한 주인공 '팀'은 그의 첫째 아기 '포지'가 태어나기 전으로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기로 한다. 나비효과처럼 어떤 생명이 태어나기 전의 순간을 바꾸면 그에 따라 미래도 바뀌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어떤 상황을 바꾸면 미래의 그의 아기는 다른 모습의 아기가 되어 버린다. 그는 동생이 처해있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어떤 순간을 바꾸고 싶었지만 결국 그의 아이를 위해 동생의 위기를 현재에서 함께 해쳐나가기로 한다.


'어바웃 타임'이란 영화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주인공 '팀'을 통해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이다. 주옥같은 대사들과 멋진 장면들로 가득 찬 이 영화에서 난 유독 위의 저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한 당시 나는 삼십 대 중반의 싱글 남자였다. 재미로 보기 시작한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느끼는 자신의 아기에 대한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음, 그럴 수 있지' 정도의 상상만 할 뿐이었다. 영화나 책 등 모든 기록 문화를 통해 느끼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많이 변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다시 본 저 영화의 장면을 다시 돌이켜 본다. 자신을 아기를 지키기 위한 그 선택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나 자신’만 챙기고 보살피는 단계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와 한 집에서 같이 살며 모든 일상을 함께하는 단계로의 변화는 참 놀라운 일이다. 인생의 2막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조그마한 생명체까지 합쳐진다면 그건 분명 다른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특정한 때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중요한 일들은 특정 시간에, 일어날 준비가 되면 일어나는 것 같이. 역시, 이 과정에서도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얼마 전부터 걷기 시작한 우리 아이를 문득문득 바라볼 때마다 '정말 많이 컸다', '진짜 빠르게 크는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럴수록 지나간 사진도 많이 들여다본다. 지난 4월 맞이한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돌아보며 1년 동안 수고해 준 식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이 첫 한해의 시간을 '동지애'로 자주 표현한다. 혼자가 아니라 느낄 수 있었고 경험할 수 있었던 이 시간들의 주인공인 식구들이 너무 고맙다.


반면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스로를 보며 참 철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심지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깐이라도 조용하게 내 시간을 갖고 싶곤 하다. 상대적으로 육아의 무게를 더 많이 느끼는 아내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다 결국 도착하는 곳은 항상 같다. ‘혼자만의 시간은 이미 다 썼다.’ 타지에 나와 살며 혼자 지낸 기간도 길었고 그동안 항상 즐겁지 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도리어 혼자인 것이 싫을 때가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현재의 시간 흐름은 아주 자연스러운 순차적이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들을 돌이키고 싶다면 그건 좋은 면만 좋게 포장하여 좋게 기억하려는 망각이다.


오늘의 나는 사이사이 짧은 순간들에 행복감을 느낀다. 아이가 잠들고 보는 아내와 함께 보는 넷플릭스, 오늘은 어떤 걸 볼지 티격태격 싸우며 그와 함께 곁들이는 와인 한잔 등. 아하, 그다음이 압권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간접 경험하는 세계를 보며 그곳을 동경하지 않고 이제는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을 돌아보며. 그렇게 아내와 서로의 과거가 더 촌스럽다고 낄낄거리는 것이 행복하다.


 그렇게 시간은 정방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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