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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Jun 15. 2020

부정적 표현은 '부정'할 때만

by 베를린 부부-chicken

예전 중학교 때 시험시간이었다. 교실 앞쪽의 누군가가 시험감독이었던 사회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답안지 바꿔주시면 안 돼요?" 그러자 선생님은,


"안돼냐고 부정적으로 물어보지 말고, 그냥 바꿔주세요라고 얘기하면 바꿔줄게."


라고 답하셨다. 이 장면은 이상하게 살면서 뚜렷하게 기억나는 몇 안 되는 장면 중에 하나가 됐다. 그리고 그 뒤로 난 그 장면을 계속 되뇌며 되도록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했다. 왠지 그 순간의 선생님이 멋있게 보이기도 했고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강하게 사로잡혀서였다. 당시 10대 중반이었던 내가 과연 긍정과 부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일까 부정적인 사람일까. 누구나처럼 겪는 긍정과 부정 사이 공간에 대한 고민을 나는 우리 아이가 태어날 즈음 더 치열하게 했다. 거창하게는 본격적인 육아전쟁에 나서기 전 전열을 다듬는 계기이기도 했고 아이에게 꾸준히 노출될 '나'에 대해서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였다.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생각들은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 그러니 내가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옆의 누군가가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놀랍게도 아이를 통해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나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아이가 말을 조금씩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후부터 느꼈다. 난 너무 자주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안돼' '그건 안돼' '그러면 안돼' '이거는 안돼' 온갖 안된다는 것 천지다.


아이를 '훈육'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보통 생후 6개월 정도라 한다. 사실 생후 6개월 정도까지는 먹고 자고 노는 것 등, 아주 기본적이지만 엄청나게 힘든 몇 개의 요인들로 아이와 지내는데 별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금씩 아이의 눈이 또렷해지고, 특히 먹는 것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며 자신의 '생각'이 생기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인내심'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그즈음부터 아이에게 '안된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평소 어벌쩡하게 표현한다던가 어중간한 의사표현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역시도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더 분명하게 표현해서 아이가 스스로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본 게임이 시작되자 기껏 작전이나 전략 따위는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하나부터 열까지 안된다고 아이와 씨름을 하다 먼저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감정적인 대응이 가장 안 좋다고 한다. 그러기에 최대한 감정의 동요를 조절하기 위해 아이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등에 대해 틈틈이 미리 생각해 놓는 편이다. 그리고 하루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더욱 그 시간을 짜증과 인내심과의 싸움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역시 '부정적 표현'의 자제이다. 안된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미리 한 발 앞서서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치워놓고 아이가 건드리면 위험한 것들만 선별해 놓는 식으로 손을 써 놓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머리를 쓰고 나름의 준비를 해도, 단전에서부터 끊어 오르는 묵직한 분노와 짜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도 잦은 부정적 표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왜 나는 아이에게 이리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많을까.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간단한 답변으로 귀결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 그냥 내가 싫은 것이다. 아이가 손에 닿는 걸 모두 만지고 어지르는 게 싫은 것이고 무언가 망가지는 것도 싫은 것이다. 결국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내 성격의 문제이다. 그거 참 생각해보면 별게 아닌데. 책이 좀 구겨지면 어떻고 어떤 물건이 못쓰게 될 수도 있는데 난 그게 싫은 것이다. 마치 어떤 아이가 자신의 물건을 너무 아껴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하듯이 말이다. 그토록 아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나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은 나의 모습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감정에서 자유롭게, 긍정적인 표현으로 아이와 놀고 싶다. 비록 지금은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는 시간 동안 나도 아주 조용히 조금씩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얘기 좀 덜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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