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아내가 임신한 뒤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작년 11월이었으니 임신 5개월째였다. 초반에 입덧이 심했던 아내가 집을 ‘제대로’ 벗어나는 건 임신 사실을 인지한 뒤 처음이었다. 임신 5개월이면 임신 중기에 해당하지만 정작 우리 부부보다 양가 어르신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에 적잖이 걱정을 하셨다. 다행히도 우리 담당의는 쿨하다 못해 잘 다녀오라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는 인사를 챙겼다.

아내는 줄곧 길고 긴 베를린의 겨울의 잠시 잊을 수 있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원했다. 햇살 좋고 경치 좋고 먹을 것이 넘치는 지중해를 원했지만 나는 되려 북유럽을 보고 싶었다. 과연 난민들의 최종 목적지라는, 복지와 아이용품의 본고장, 북유럽 말이다. 우리 부부 모두 스페인에 살았던 덕에 결국 우리는 이제껏 가보지 않은 정말 새로운 북쪽으로 가자는 의견에 도달했다.

일단 북유럽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뮤지션으로 치자면 베스트 앨범부터 살펴봐야 했다. 각 나라의 수도를 위주로 말이다. 여정은 한 도시에 4박 5일 머물며 최대한 자세하게 살펴보자 했다. 코펜하겐은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중간하게 한 번씩 가봤고, 오슬로는 비싼 물가로 포기했고, 레이캬비크와 헬싱키는 최초 생각보다 비행시간이 긴 것 같아 포기했다. 그렇게 스톡홀름이 우리 부부와 아이가 최초로 함께 가는 여행지가 된 것이다.


춥디 춥다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외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도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숙소는 어떤 형태의 숙소로 어디쯤이 좋을까, 아침을 먹을 수 있는 호텔로 갈까 부엌이 딸린 숙소로 갈까. 언제나처럼 아내가 아이디어들을 늘어놓아주면 내가 루트를 짜고 일정의 윤곽을 잡는 식이었다. 그 아이디어 중 대부분은 추운 날씨에 쉬어 가기 좋은 장소들이었다. 아내는 몇 시간씩 걷기 힘들어해 중간중간에 몸을 녹이고 쉬어갈 수 있는, 눈 구경으로 시간을 보내며 짬짬이 앉을 수 있는 장소들이 제법 필요했다. 그리고 그 검색도구는 역시나 인스타그램이었다. 몇 마디 영어로 검색하면 놀라운 정보들을 쏟아내는 걸 보며 역시나 바뀌어 가는 검색환경이 놀라울 뿐이다.

숙소는 에어비엔비와 호텔 중에 긴 시간 고민과 검색을 거듭했으나 에어비엔비가 스톡홀름에서는 별로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앞으로 아이와 하는 여행에서 목적지를 불문하고 에어비엔비는 앞도적인 선택지가 될 테지만. 아무튼 최대한 시내 중앙역과 가까운 위치의 호텔을 중심으로 여차해서 아내가 쉬어야 하는 순간엔 신속하게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체력 안배를 잘해서 위급한 상황은 없었지만 해가 짧은 겨울 여행에는 역시 도심지 숙소가 더 쓸모가 많은 것 같다.


현금은 환전조차 하지 않았다.

스톡홀름 여행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카드로 모든 결제가 해결 가능한’ 지불방식을 꼽겠다. 심지어 공공화장실에 가기 위한 얼마 안 되는 돈도 화장실 문에 달린 카드 인식기를 통해 결제하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여행 전부터 환전할 필요 없다고 여러 번 듣고 읽는 동안 가졌던 의구심은 도착 첫날 말끔히 사라졌다. 기념으로 환전하는 게 아닌 이상 현금을 쓸 필요는 없다. 유로화로 화폐단위를 바꾸지 않은 스웨덴의 선택이 불편하지 않았다.

이곳도 물이 공짜구나

도시 어딜 가나 ‘물 인심’이 아주 후하다. 수돗물을 그냥 음수 하는데 물맛도 나쁘지 않다. 수돗물을 그냥 음수 하는 경험은 마드리드에서 해봤다. 지형상 산에서 내려온 물을, 로마인의 상하수 시설을 이용해 그냥 마신다. 그래서 더더욱 바르셀로나에서 물을 사 먹는 것은 불편했다. 돈이 들어가는 것도 그랬지만 물을 사서 집으로 나르는 것도 왠지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스톡홀름의 여느 따스한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마신 얼음장과 같은 시원한 물을 잊을 수가 없다.


해산물이 흔하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 사람인 우리 부부에게 해산물이 귀하디 귀한 베를린은 조금 혹독하다. 그래도 마트별로 해산물 코너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집 주변 생선가게에서 퇴근길에 사가는 한주먹의 싱싱한 새우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스톡홀름은 그런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장소다. 다양한 형식의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시장과 같이 붙어있는 가게들이 가장 훌륭한 것 같다. 뭐 아무리 그래도 갓 살아있는 생선을 회로 노량진처럼 먹을 수는 없지만!


구 도심은 지형의 변화가 많다. 높이가 다양하게 변화함에 따라 사는 모습도, 일상을 일궈놓은 모습도 새로운 것이 많다. 거기에 바다까지 면해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예전 내가 마드리드에서 어학을 하던 시절, 스페인어를 같이 배우는 친구 중에 잭(Jack)이라는 스웨덴 친구가 있었다. 키가 185는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금발, 그리고 얼굴이 하얀, 80~90년대 디즈니 만화에서 왕자 역할로 나올만한 비주얼을 가진 그 아이가 생각났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그의 외모가 북유럽인들에 대한 환상을 가져다줬는지도 모르겠다. 영어에도 능통하던 그는 항상 앞서가는 스페인어를 구사했다. 스스로는 그냥 감으로 '이럴 것 같아서' 이야기 한 단어나 문장이 맞는 식이었다. 물론 더 고급으로 갈수록 이런 우연에 기초한 '얻어걸림'의 확률은 줄어들겠으나 일상에서 그냥 구어체로 소통하는 단계에선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스톡홀름에는 '잭'이 참 많았다. 상대방이 어떤 언어를 구사해도 왠지 받아줄 것만 같은,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 꽤나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언어를 익힌 사람들의 그 부러운 여유.


Stockholm Public Library / Gunnar Asplund / 1918~1928 / ©HK Shin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건축가, 아스플른트 (Gunnar Asplund)의 작업은 그 시대정신에 맞게 정말 모든 것들을 직접 제작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고유성이 있다. 문고리까지도 섬세하게 제작된, 모든 것이 꼼꼼하게 계획된 완성도 높은 작업을 보는 건 상당히 긴장감이 크다.

긴 겨울 집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들의 영향은 인테리어 소품, 건축에도 많이 드러난다. 하긴 그렇기에 이케아가 가능했는지 모른다. 스웨덴의 건축가들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주말 주택, 휴가 주택의 개념이 많이 등장하는데 정작 위치를 찾아보면 도심에서 멀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많다. (도심에 섬이 많으니 배를 타고 가는 곳도 있다.) 그 많은 주택들의 실내에도 이렇게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일 것만 같은 가구들과 소품으로 가득할 것이다. 여러 다른 북유럽의 건축가들도 여러 크기의 가구를 비롯해 인테리어 소품까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다양한 컬렉션을 노르딕 박물관(Nordiska Museet)에서 볼 수 있다.



KTH School of Architecture / Tham & Videgård / 2007~2015 / ©HK Shin

스웨덴 왕립공대(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에 위치한 타원형의 건축학과 건물은 주변 적벽돌의 옷을 입은 건물들과 꽤나 잘 어울린다. 그러나 굳이 코르텐으로 마감하지 않았어도, 원형의 형태만으로도 눈에 띄는 건물이었을 것이다. 가로로 긴 창에 반사된 하늘이 벌써 옆의 이웃한 건물들에서 볼 수 없는 투명하고 시원한 인상을 준다. 내부로 들어가 그곳의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상당히 궁금했으나 생각 외로 건물의 많은 부분이 통제되어 있었다.


©Rafael Moneo
Museum of Modern Art in Stockholm / Rafael Moneo / 1991~1998 / ©HK Shin

스톡홀름 현대 미술관은 스톡홀름에 간다면 가장 보고 싶었던 건물이었다.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는 대지 주변의 건물들과 '외형적으로' 비슷한 유형을 뮤지엄에 이용했다. 대지 전면의 교회의 지붕과도 유사해 보이며 섬의 가장자리의 박공지붕의 건물들과도 유사해 보이는 '그 동네 유형'을 기다린 대지에 주욱 늘어놨다. 마치 기존 건물들이 새롭게 오와 열을 맞춰 재배열된 듯한 인상이다.

작은 전시실들의 천창들이 모여 한적한 섬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크기의 전시실 사이의 공간이 입구이자 기념품 가게이고 휴식공간이며 식사 공간이며 독서공간이다. 이렇게 길게 늘어선 공간을 전면의 통로로 연결해 놨는데 바로 이 복도 공간에서 기존에 대지에 있던 건물을 천천히 긴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다. 기존에 있던 건물이 얼마나 대단한 건물이라기보다 공모전 당시 다른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전시공간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지려 한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모네오는 대지를 가로지르는 실내 골목길을 만들고 거기에 모든 시설을 연계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강하게 눈을 사로잡는 순간은 뮤지엄을 방문하는 내내 없을 수 있으나 아마도 스톡홀름이 '전시시설'을 인지하는 방식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특별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일상적인 소소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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