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이에게 습관이 생긴다.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한 달에 한 번씩 엘턴 브리프(Elternbrief)라는 a4 두 장 분량의 인쇄물이 우리 집 우체통으로 배달된다. 보통 ‘이 시기의 아기는..’이라고 시작하는 이 인쇄물에는 육아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이니 매달 다른 집 아이들이 이때 즈음 보통 어떤 과정에 있구나를 개략적으로 볼 수 있다. 가끔씩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구나’ 혹은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등의 위안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어떤 변화들이 생기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등의 정보들은 초보 부모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첫째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육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면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지난달의 엘턴 브리프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적어도 한 번은 시범을 보여주고 가르쳐줘야 합니다.”


사실 이 인쇄물을 그리 열심히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인쇄물을 준비하고 보낸 사람의 정성을 위해 대강이라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인쇄물은 베를린시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그러나 유독 위의 문장은 굵게 적은 글씨체만큼이나 깊숙하게 와 닿았다. 시선을 저 멀리 창가에 두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할수록 아주 맞는 말이다. 우리들의 모든 행동과 말투는 길고 긴 역사를 가진 학습과 반복의 결과이다. 당연히 아이들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첫 단추를 끼워줘야 다음 단추를 채울 것이다.


굳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어도 어떤 상황에서나 아이가 이렇게 행동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천천히 아이가 이해하고 습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알려줘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먹을 것을 바닥에 던진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 각도로 알려줘야 한다. 아이에게 왜 안된다고 하는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그러나 항상 밥만 먹는 게 아니므로 보통 이런 과정은 짧게 끝나지 않는다. 아침 먹을 때 잘하던 아이가 점심 먹을 때는 안 그러기도 한다. 어느 순간 아이가 하지 말라는 행위를 중단하면 칭찬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단순한 절차는 아니다. 부모가 까르르까르르 좋아라 하는 아이의 애교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보기에 이뻐 보여서 자꾸 독려하고 반복하게 하는 행동도 그렇다. 사소한 말투나 행동은 물론 의사결정이나 대처능력 등 저 문장 하나로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끝이 없다.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모든 행동과 말투는 결국 반복학습의 결과이다.


아이가 주변 사람으로부터 스스로 습득하는 행동이나 말투는 아이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들 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다. 가끔씩 아이 앞에서 별생각 없이 내가 반복하던 말투나 행동을 아이가 따라 하는 걸 보고 기겁하기도 한다. 내가 습관적으로 내뱉던 한숨을 18개월 아이가 따라 하는 걸 보고 멍해진 적이 있었다. 그러니 모방의 위험성을 알고도 방치한다면 그건 나의 잘못이다. 어른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가 배우지 말았음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있다면 먼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어떤 것은 쉬웠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귀찮더라도 우리 부부는 신호를 기다리고 제대로 건너는 편이다. (이건 사실 좀 눈물겨운 여담인데 횡단보도에 대한 습관은 예전 스페인에서 무비자 체류 때 익은 습관이다. 역시 비자 없이 생활하던 지인이 어이없이 무단횡단으로 단속된 경찰과의 마찰로 쓸데없는 언쟁에 휘말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반 강제적으로 아주 모범적 공중도덕을 지킨다.) 그래서 유모차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뒤에도 귀찮지만 횡단보도를 제대로 건너는 것이 그리 번거롭지 않았다. 어부지리로 얻어걸린 이 올바른 횡단보도 습관은 우리 아이에게 잘 전달될 것이다. 아이는 원래 신호 버튼을 누르고 신호를 기다렸다 건너는 것을 으레 ‘당연하고 그러려니’ 생각할 것이니까.


며칠 전 출근길에 본 풍경이다. 어떤 아빠와 아이가 자전거를 나란히 타고 가고 있었다. 마침 자전거 도로와 보도의 경계가 애매한 지역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보도의 일부분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야 하는 구간의 끝에서 두 사람은 횡단보도를 만났다. 그러자 두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전거에서 내려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 자연스러움의 정도가 하루 이틀 연습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저렇게 알려줘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요새 참 많이 드는 생각이다.


내가 평소에 고치려고 했으나 실패한 나쁜 습관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습관은 무엇일까. 어떤 습관이 정말 '좋은' 습관일까. 아이 덕분에 나 스스로도 나의 습관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결국 나도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