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봐야 육아 21개월 차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난 아기 젖병 닦는 게 그렇게 싫었다. 매일 저녁 아이가 잠이 들면, 5-6개의 젖병, 젖꼭지, 치발기 등등이 부엌에 쌓여있었다. 한참을 닦고 씻고 살균기가 가득 차도록 꽉꽉 넣어주면 그제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매일 저녁,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은 모습을 하고 부엌에 쌓여 있는 아기용품들이 싫었다. 왠지 닦아도 닦아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 매번 '오늘은 기분 좋게 닦아야지'라며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결국은 한숨을 푹 쉬며 끝나곤 했다. 한국에 가서 살균기를 구입하기 전이 더 심했다. 소독을 위해 끓는 물에 넣었다 잽싸게 꺼내야 그 온기로 물기가 비로소 깨끗하게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육아의 과정들이 그렇듯 언젠가 끝난다 끝난다 하지만.. 아이의 출생 후 1년이 유독 나에겐 길게 느껴졌다.


등치가 좋은 살균기가 생기며 정말 한시름 놓긴 했다. 그뿐이랴, 가성비 최고를 자랑하는 샤오미 커피포트도 지금까지 정말 잘 쓰고 있다. (진정 육아는 '장비 빨'이었던가.) 틈틈이 부모의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많은 과정들이 아이가 자라나며 필요 없어지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바뀌어 가며 정말 큰 변화를 느끼곤 했다. 무론, 그중 가장 큰 변화의 척도는 아이의 성장 속도이다. 정말 조그마하고 앙증맞던 아이의 손과 발이 통통해지고 눈에 띄게 커지는 모습을 보며, 특히 잘 때 길쭉길쭉 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감격스럽다. 비슷한 의미에서 육아 선배들이 노래 부르던 가사들을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0개월 정도가 넘어가며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무엇보다 '언어'이다. 이제는 제법 '어버버'에서 벗어나 표정과 행동 등을 곁들인, 좀 더 체계적인 옹알이를 한다. 동시에 조금씩 양방향 소통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경우, 엄마는 진작에 아이와 양방향 소통을 시작했다. 아빠만 아주 더뎠다.) 아이가 표현하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나의 말을 아이가 이해하니 예전과 조금 다른 세상을 만날 기분이랄까. 답답한 것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행동이, 말이,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요새 들어 부쩍 예전 사진을 많이 들여다본다. 신생아 시절부터, 눈을 뜨고, 100일을 지나, 웃고, 기고, 걷기까지. 지난 2여 년의 시간들이 유독 잘 기억하기 힘들다. 머릿속 어딘가에 순간들이 조각조각 어딘가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맞춰지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찍어둔 사진을 들여다봐야 기억난다. 지금보다도 더 조그마했던, 아주 작은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그것도 이미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의 기록을 보고 있으면 참 새롭다. 하루하루 길게만 느껴졌던 그 시간들이 이렇게 지나고 나니 더 그렇다. 여느 엄마 아빠의 고백처럼 지나고 나면 느낀다는 과정에 있다. 자연스레 "언제 이렇게 컸을까"와 "정말 많이 컸다"를 자주 외치게 된다.


새삼스레 꺼낸 이런 이야기들도 그나마 요새는 '후우, 예전보다 조금은 좀 나아진 것 같다'는 느낌에서이다. 그렇게 생긴 아주 조금의 여유로 시간을 돌이켜 보니, 결국 지난 21개월간 내가 뱉었던 수많은 혼자만의 말들은 정말 나 스스로에게 한 말들이었다. 아이의 어떤 행동을 제지할 땐, '내가 왜 제지하려 하는 걸까'를 생각하게 되고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할 땐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를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내가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가 사인펜의 뚜껑을 열고 이리저리 펜을 휘두르고 다닐 때 나는 왜 절박할까. 나는 왜 불안해하는 것일까. 어디에 묻는 것이 싫은 걸까. 벽에 직직 그으면 나중에 페인트 칠을 하면 되는 건데. 그럼 이 벽만 칠하면 될까 아님 방을 전체 다 칠해야 할까. 대강 이런 의식의 흐름이다. 이 정도 되면 결론에 가까워진다. '결국 내가 페인트 칠 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이를 혼내는 것이구나.'


이미 펜의 뚜껑을 열어 어디론가 던져버린 아이에게 종이를 가리키며 종이 위에만 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들, 어디 들리기나 할까. 행여 이런 순간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보란 듯이 하얀색 벽에 지이익 과감하게 붓 터치하는 아이는 확실히 나의 감정을 구석으로 몰아세운다. 좀 더 나이스하고 신사적으로 이 상황을 빠져나오고 싶지만 어른 아이에게는 그저 큰 몸, 큰 목소리가 무기다. 내심 입술을 지그시 깨어물고 "쓰읍!"을 먼저 뱉게 된다. 역시, 좋은 순간보다 감정이 동요하는 순간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


그래도 비슷하게나마, 멀게 돌아 돌아서, 이렇게 나의 모난 성격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해 주니 그래도 아이에게 고맙다. 아빠도 네가 이걸 배우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단다.


가면 갈수록 다각도로 어려워지는 육아, '제일 힘든 건 그래도 지나온 거죠'라는 질문에 앞서 나가는 육아의 베테랑들이 대답한다.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니까!'

오 마이 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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