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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Nov 24. 2019

‘남편’과 ‘아빠’ 사이 - 만남 2

by 베를린 부부-chicken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 특별한 순간의 감동이 있다. 이것저것 정신없는 그 순간을 가로지르는 감정들이 있다. '아 이제 진짜구나.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왔구나.'


시행착오

아이의 출생 다다음날이었을 것이다. 모유수유와 관련해 특히 힘들었던 그 날 저녁이었다. 물론 벨을 누르면 닿는 곳에 간호사들이, 산후조리사들이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도 우리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방금 세상에 나온 아이와 처음 부모가 되어보는 엄마 아빠의 시행착오들이 심적으로 쉽지 않다. 아이는 울고, 울고, 또 울지만, 아이가 울음을 그칠 수 있도록 원인을 아는 순간은 너무나 적다.

그날 밤도 저녁 8 시인가부터 아이가 울기 시작해 새벽 1시가 넘도록 그치질 않았다. 안으면 잠깐 달래 졌다가 다시 울고, 배고픈가 싶어서 젖을 물리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울고, 졸린가 싶어서 품에 안고 재우면 그게 아닌가 또 울고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순간들을 반복하다가.. 가끔씩 무너지곤 한다.

아기가 계속 우니 결국 산후조리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분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우리 부부에게 살갑고 꼼꼼하게 대해주셨다. 그분이 이렇게 해봐라, 이거는 어떠냐, 이것일 것이다, 등등 꼼꼼하게 체크해 주시고 나가시려던 순간, 아내가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아마도 복잡한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었을 것이다. 아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자 그분은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갑작스러운 게 맞아요. 그래도 당신은 이제 엄마가 되었어요.”

"괜찮아요. 쉽지 않지만 할 수 있어요."

"아주 잘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도와줄 거예요. 힘내요."


그분에게 이런 얘기를 아기를 품에 안은 체 듣던 아내도,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눈이 붉어졌다. 아, 이제 아이와 평생을 함께하는 거구나. 이 아이가 잘 자라도록 우리가 부모가 돼야 하는구나. 꿈틀꿈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정말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그 짧은 며칠 병원에 있는 동안 지나갔다.


병원에 머문 며칠 동안 맛본 육아의 시작은 그런 것이었다. 너무 서투른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고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가 해야 하는 일들도 같이 변화하므로 ‘끝이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 분유 먹이는 게 익숙해질 즈음 아이는 이유식을 시작하고 기저귀를 가는 게 익숙해질 즈음 아이는 기고 걸으며 가만히 있지 않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아이 대하듯 우리에게 알려주던 산후조리사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동시에 한국의 산후조리원 문화가 참..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한국에서 낳았어야 하나’ 약간의 미련도 남았다. 신생아 육아에 있어 프로이신 분들이 상시 아이를 봐주시며 엄마들이 체력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시니 생각만 해도 참 든든하겠다 싶었다.


아이의 이름

퇴원하기 전 마지막 절차인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병원에 구청 직원이 상주하는데 우리 아이는 주말이 시작되며 세상에 나온 탓에 퇴원 직전인 월요일이 돼서야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며 워낙 많은 행정절차를 지나왔지만 이 출생신고가 가장 긴장됐다. 정확히 잘 처리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여기서 결정하면 아이의 이름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필요한 서류들을 주욱 준비해 병원의 구청 직원에서 전해주었지만 결국 구청에 다시 찾아가야 했다. 나의 출생증명서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나 자신의 출생증명서는 머리털 나고 거의 처음 발급하는 거라 대사관에서 조금 우왕좌왕했다. 태어난 아이의 국적이니 등의 행정적 판단을 위해 모든 서류를 제대로 제출해야 했다.

출생신고 직전까지 아이의 이름에 대해 여러 날을 고민했다. 한국 이름이어야 할까, 독일 이름이어야 할까.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우리 아이의 이름이 확정되는 순간이기에 이 출생신고의 순간을 대부분 부모들이 아슬아슬 지난다. 직장동료 중 하나는 이미 제출했던 서류를 돌려받아 다시 작성했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 간다.

아이의 이름을 정한다는 것은, 뭐 적어도 내가 초보 아빠로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 걸 수도 있으나, 그 아이가 어떠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너무 거창해서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너무 평범한 이름은 싫었다. 아직도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아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어떤 이름을 갖고 싶니?".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막역하더라도 어떤 틀을 잡아줘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가나다순의 순 우리말 사전부터, 알파벳 a에서 z까지 이름과 관련된 배경 및 통계까지 알려주는 사이트를 출퇴근마다 정독을 했다. 더불어 우리 부부의 ‘경험상’, 우리네 삶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에 너무나 격하게 공감하는바, 적어도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언어들에서는 아이의 이름이 똑같이 발음되기를 바랐다. 이 아이가 세상 어느 곳에 가서 어떠한 언어를 하며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는 h가 묵음처리가 되어 아무런 발음도 나지 않고, 독일어에서는 s발음이 첫 모음과 만나면 시옷이 아니라 지옺에 가까운 발음이 되는 것과 같은 발음 상의 착오를 줄이고 싶어 했다. 아내와 나, 모두 이런 발음상의 착오로 인해 외국에서 우리의 본명을 잃어버리고 산지 오래됐다. 우리 부모님 시대로 돌아가 “자식의 이름을 어느 누가 불러줄지 모르니 너무 한국적인 이름보다 외국 아이들도 부르기 좋은 이름이면 어떨까요”라고 조언했다면 도리어 이상한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우리의 이름을 이상하게 발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은 어찌 됐건 우리의 선택이므로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어떤 이름을 정하기는 했다. 그리고 아이 본인의 의사를 물어볼 수 있을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에게 다음의 사이트를 추천한다.

https://www.behindthename.com


퇴원

병원을 퇴원할 때 차로 이동하기 위한 카시트에 누운 아기다. 신생아는 정말 정말 조그마하다.

출생 당일부터 아이와 엄마가 같은 병실을 쓰는 ‘모자동실’이 기준인 독일의 경우, 육아의 개념이 조금 다른 것을 느낀다. 부모가 처음 육아에 대해 겪는 시행착오를 얼마든지 누군가가 어디에서 도와는 주지만 결국 본인들이 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개념이다. 주체적이라는 것은 사실 어느 나라의 어느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특히 독일의 경우 주변을 찾아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그러나 그곳을 찾아가 도움의 손길에 대해 소통을 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 모두 부모님의 몫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올인원’의 개념은 없다.

결국 아이의 출생은, 오롯이 부모님의 결정과 결단의 결과이기에 이 '고생스러운' 과정을 자발적으로 직접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 참 이렇게 요란스럽고 거창하게 포장을 해야만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기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동안 느껴지는 뿌듯함과 성취감 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은 결국 부모의 선택이다. 아이의 출생은,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부모의 책임으로 변하며 육아의 다음 단계로 접어드는 시작점이다. 그리고 현실은, 이런 잡다한 생각을 허락할 만한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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