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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Nov 18. 2019

‘남편’과 ‘아빠’ 사이 - 만남 1

by 베를린 부부-chicken

아내는 출산의 고통에 대해 겁을 먹을 때가 있었다. 주변의 출산을 경험하신 분들의 하나 같이 '생생한'조언부터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서적들에도 예리하고 날카로운 정보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얘기가 가장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이가 나오는데... 아프죠. 그래서 진통도.. 아마 본인이 알 거예요. 이게 진짜라는 걸."


가진통이니 진진통이니 뭐 복잡한 이야기를 단 번에 정리를 해줬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겠다는 진통은 출산 예정일 1주일 전부터 슬슬 잦아지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10달 동안 정말 많은 신체적 변화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만은 이 출산은 10달의 여정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동시에 새롭게 ‘육아’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마음속으로 이 힘든 10달이 지나가기를 바랐지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앞서가는 생각은 여러 육아 관련 책에서 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여러 명언 중 하나였다.


일반 병실에서 하루, 가족실(우리 가족만 쓸 수 있는 독립된 병실로 추가 비용이 있다.)에 이틀, 이렇게 총 3일을 병원에서 지냈다. 금요일 00시에 병원에 입원해 월요일 점심은 집에서 먹었다. 특히 아내는 응급 제왕을 한 수술 환자였지만 다행히 회복의 추이도 괜찮고 별 문제가 없었는지 병원에서도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날짜 상으로 지인들이 병문안을 할 수 있는 날짜는 일요일밖에 없었다.


우리가 만약 한국에서 출산을 한 번 경험했다면 ‘한국은 이럴 텐데’하며 심적으로 좀 힘들 수도 있었겠으나 어차피 우리도 모든 게 처음이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식사였다. 미역국이니 뭐니 출산 직후 챙겨줘야 하는 먹거리가 정말 많은데 장거리 비행 기내식과 비슷한 병원 식사는 좀 충격적이었다. 장모님이 매일매일 챙겨주긴 미역국과 뜨끈한 밥으로 버텼다. 그나마 점심에는 따뜻한 음식들이 나왔는데 주로 영양가를 생각한 고칼로리의 고기 음식들이었다. 그러나 이것들도 역시 여러 ‘기타의 순간들’ 중 하나였을뿐 가장 중요한 순간은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수술실에서 갓 나온 아이의 무게를 재고 키를 재고 발도장을 찍는다. 나는 그냥 산후조리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뭐가 뭔지 파악하려 애썼다.

 

우리 아이는 응급 제왕으로 세상에 나왔다. 진통이 시작된 지 15시간 여가 지나 간호사와 의사들이 무언가 심각하게 수군수군하는데 심상치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들은 여러 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가 출산하기에 좋은 자세가 아닌 것을 알고 수술을 해야 한다 주장했고, 간호사들과 산후조리사들은 자세를 바꿔서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는 엇갈린 주장을 교환 중이었다. 아내는 무통주사가 이제 더 이상 들지 않는지 아주 힘들어했고 동시에 불 끊듯이 체온이 올라가고 있었다. 기어코 의사가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이의 머리가 바닥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천장을 보고 있어 앞으로 30분 이내에 아이의 자세를 돌리지 않으면 둘 다 위험해지니 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사실 우리 부부는 제왕절개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냥 우리도 자연 분만하겠거니 생각을 했던 게 임신 기간 동안 제왕절개를 해야 할 상황이 오리라는 어떠한 징조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 물론 그러니까 “응급 제왕”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얼핏 지나가는 말로 입원 때 예상치 못하다가 급하게 수술을 하는 경우가 30프로 정도 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위험”할 수 있다는 그 말에 꽂혀버렸다. 순간 불안감이 온몸을 감쌌다.

30분의 시간 동안 아내는 엎드렸다가 앉았다가를 그들의 지시대로 시도했으나 아이의 자세는 그대로였고, 결국 나는 우리를 둘러싼 여러 명의 의사들에게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리곤 의사 한 명이 서류를 들고 와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인하라고 했다. 그렇지, 내가 보호자니까.

불안감인지 초조함인지 모를 눈물이 막 흘렀다. 아내와 아이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는 것도, 전혀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수술 중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보는 것도, 모든 게 눈물로 흘렀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정신없이 사인할 줄 알았으면 제왕절개에 대해 좀 미리 찾아보기라도 할걸, 후회도 눈물로 흘렀다. 그렇게 난 아내를 수술실로 보냈다. 그 후 간호사들이 주는 옷을 입고 복도에서 대기했다. 순간 새벽에 수술복을 어색하게 입고 복도를 서성이는 사내들이 떠올랐다. 아, 그들도 응급 제왕 수술을 기다리는 거였구나.

수술의 위험성은 절개를 하며 아이에게 상처가 나는 경우, 아이가 나오며 엄마의 장기를 건드리는 경우, 봉합하기 전 장기를 의사들이 건드리는 경우, 봉합이 잘못되는 되는 경우 등등 여러 가지였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가능성이 어쨌느니, 지금 들어도 후들후들한 내용들을 아내가 막 소리 지르며 아파하는 상황에 어찌 잘 이해를 했겠는가. 아내를 홀로 수술실에 보내 놓고 복도에 나 홀로 수술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그 몇 분이 정말 길었다. 혹시 내가 잘못된 결정을 한 게 아닐까, 혹시 무슨 일이 나면 어쩌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와리과리 할 때쯤, 간호사가 나왔다. 이제 준비가 됐으니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들어가니 이미 개복 상태였다. 아내는 나를 보자 이윽고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먼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빙 둘러싸여 수술대에 오르니 그녀도 참 복잡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아내를 달래는 동안 여러 명의 의사들이 저쪽에서 수술 중이었고 의사는 나에게 일부러인지 말을 걸었다. 이름은 정했냐, 이쁜 이름이다, 등을 썩은 얼굴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찰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신생아는 정말 조그마하다. 그래서 너무 조심스럽다. 따뜻한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왔으니 아이에게도 급작스러운 변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로 들리는 순간. 마침내 10달 동안 아내와 함께 있던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산모와 다르게 아이에 대한 체감의 정도가 달랐던 아빠와 아이가 만나는 최초의 순간. 모든 ‘최초’에는 그 단어만의 감동이 있다. 누구처럼 그 순간을 사진으로든 동영상으로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수없이 머릿속으로 훈련하고 연습했지만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한 아빠. “응애”하고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준 아이에게 고맙고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을 기쁘게 열심히 해준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되었다.


이후에 아내가 말하길, 나와 떨어져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는 게 가장 무서웠었다고 한다.



아내가 그녀의 시점에서 본 그 날의 기억이다. 물론, 베를린에서의 출산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도 정리해 놓았다.

https://brunch.co.kr/@bububerli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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