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사람은 모두 각자의 여행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재빠르게 여러 장소를 누비며 사진 및 동영상과 같은 시각자료를 남기는 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한 장소에 머누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부부는 후자의 경우다. 그래서 여행 경로를 주로 단순하게 짜는 편이며 여행지에 대한 꽤나 자세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여행지를 왜 정하는지부터 역사와 이야깃거리들을 찾는다. 왠지 그 정도 노력을 기울여야 여행지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진짜 무언가를 제대로 본 것 같기도 하고, 눈으로 보이는 것 넘어를 생각할 시간도 주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브레멘(Bremen)으로 향할 때는 조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이례적으로 1년에 한국을 두 번이나 다녀오느라 쓸 수 있는 휴가도 없었고 주머니에 남은 돈도 없었다. 그러나 짧디 짧은 독일의 여름 날씨는 어떻게든 즐겨야 했다. 보통 이럴 때 뭐라도 걸려라 정신으로 구글에 엄청나게 용감한 검색을 한다. '독일, 건축’ 뭐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자료를 찾다 얻어걸린 루트가 '하노버(Hannover)-브레멘(Bremen)-함부르크(Hamburg)'의 노선이었다. 독일 지도를 보고 베를린에서 북서쪽을 한 바퀴 도는 식이다.
더 정확하자면 브레멘으로 가는 길에 하노버를 들렸고, 돌아오는 길에는 함부르크에 들른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우리의 목적지는 브레멘이었다. 맞다, 그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이 있는 그 브레멘. 일단 브레멘에 가기 전, 하노버의 몇 개만 구경하기로 했다.
하노버 중앙 역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새롭게 조성된 구역은 여느 도심과 같이 상업시설, 호텔, 사무실 등등이 차지하고 있다. 거리의 폭이나 건물들이 거리를 이루는 모습은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인다. 도리어 생각보다 널찍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에 조금 놀랐다. 어떤 도시의 '구도심', 즉 시간이 멈춘 듯하여 그곳 사람들의 아주 예전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을 볼 수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으나 2차 대전 때 폭격을 많이 맞은 도시라고 하니 새롭게 재건된 새로운 모습의 도시도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도 도심의 중앙에 위치한 교회 주변으로 몇백 년의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적벽돌을 입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Anzeiger-Hochhaus
역시 하노버의 적벽돌 건물이지만 기하학의 향현으로 인해 위압적, 혹은 갑갑해 보이기까지 하는 '안차이게-혹하우스'(Anzeiger-Hochhaus)이다. 굳이 억지로 의역하자면 ‘저널리스트 고층건물' 정도가 되겠다. 최초 신문사 사옥으로 계획된 건물이다.
난 무엇보다 이 건물의 완공연도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1928년은 세계 대공황이 독일을 덮치기 1년 전이며 히틀러가 총통이 되기 5년 전이다. 마치 일부러 짠듯하기까지 한 이 아슬아슬한 날짜에 완공된 건물은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이 건물은 키가 55m이다. 현행 독일법상으로도 ‘고층 건물’이니 완공 당시에는 아마 초고층 건물이었을지 모른다. 꽤나 큰 키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외관,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입면 요소, 심지어 마지막 층에서 길고 세장하게 좁아지는 창문 등, 고층 건물에서 자주 쓰이는 수법들이 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넓은 전면부 폭 때문에 비율이 모두 상쇄됐다. 그래서 결국, 아쉽게도 높이만큼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모른다. 건축가가 의도적으로 높아 보이지 않도록 치밀하게 계획된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건물의 외관이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이었는지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 심심찮게 등장했다고 한다. 1980년대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비정형의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건물을 미래지향적이라고 묘사했으나 이 시대에는 이런 건물을 보며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했을까.
Aalto-Hochhaus
브레멘의 도심에서 동쪽으로 몇 킬로에 위치한 알바 알토(Alvar Aalto)의 고층 주거 건물이다. 이름하여 '알토-혹하우스'(Aalto-Hochhaus)라 불리는데 건물의 이름에 건축가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으며 1988년부터는 문화유산으로 보존 중이다.
이 건물은 평면이 아주 재미있다. 모든 세대가 균일한 일조조건을 가지고 조그마한 외부 테라스를 가지고 있으며 수직이동수단(계단 및 엘리베이터)이 하나이다. 계단 및 엘리베이터를 최소로 배치하고 세대 간의 동선을 줄인 결과이다. 조금 더 수식어를 섞자면, '기능이 형태가 되었다'가 될 것이다.
맨 왼쪽의 두 세대에는 가구 배치를 표본으로 해 놓았는데, 아마도 예각이 많은 형태라 가구 배치의 불편함을 상쇄하기 위한 도움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크기의 많은 세대가 탄생했다. 1960년대 개발의 속도를 박차던 유럽의 정신에 충실한 계획이다.
실제 건물을 마주하면 생각보다 그리 '못생기진 않았다.' 왠지 내가 고층건물이라는 유형이 가진, 세로로 쭉쭉 곧게 뻗은 건물을 상상하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었나 보다. 도리어 건물 곳곳에 어느 아파트에서도 보기 힘든 재미난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