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 '브레멘 음악대' 2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의 벽들이 거리를 이루는 모습은, 왠지 하나하나 그 길을 쌓아 올린 듯한 그 손길이 느껴져 더 정겹게 느껴진다. 특히 그 길이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넓이라면 조금 오버를 보태서 포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걸 보면 나는 벽돌이라는 재료에 대해 나쁘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파트가 가득하고 간판으로 뒤덮인 상가들이 가득한 곳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직접 경험들이 평생에 남을 기억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일을 하며 경험한 내용들이 평생에 남을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기억을 따라가 보니 예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일할 때 한창 전원주택 바람이 불어 경기도 용인에 고급 전원주택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다. 벽돌 하나하나까지 아주 요란스럽게 그랬더랬다. 그래, 그때 벽돌이랑 좀 친해졌나 보다.


뭐 아무튼, 독일의 도시에서 남부 유럽과 같은 구도심의 느낌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물론 내가 현재 사는 곳이 베를린이라 더욱 그럴 테지만. (베를린이 조금 차갑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조적식 벽이 이루는, 한참 전에는 마차가 겨우 다녔을만한 골목길, 그 사이사이 환하게 불을 켜고 무언가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은 실내를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의 창문들.

차마 비가 와서 앉지는 못했으나 가게에서 파는 커피를 한잔에 담아, 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마시고 싶은 풍경이다.

시 자체적으로 브레멘 음악대와 관련된 내용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양이다. 그와 관련된 기념품들이 다양한 형태로, 각자 원하는 기억을 담아 갈 수 있도록 전시시설이나 상점들에 잘 준비되어 있다.

빼곡히 들어선 구도심의 사이 공간에 날이 개이고 해가 들어찬다.
좁은 골목 사이 버려질 만한 공간도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쌓여 멋진 휴식공간이 됐다. 건물주나 시에서 조금만 무관심했다면 벌써 무표정한 벽이 됐을 것이다.

브레멘 구 도심지역은 항구 지역이라는 특색이 합쳐져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불과 걸어서 닿는 거리에 탁 트인 강변이 있고 좁은 골목골목으로 반짝반짝한 상점이 중심지로 안내한다. 중세 여느 도시나 물가 주변에 발달된 건 마찬가지지만 브레멘도 꽤 잘 보존된 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독일에 남아있는 세계대전의 흔적에 대한 인상이 강한 편인지 어느 도시를 가나 구도심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그렇게 기대를 살짝 걷어내고 걷는다면 브레멘이 깜짝 놀라게 해 줄 것이다.


브레머 란데스방크(Bremer Landesbank)

하단부 적벽돌은 이웃의 어깨 높이를 맞추고 위에 얹은 두층은 전체 입면과의 조화를 지키되 더 가벼운 밝은 색을 입었다.

예전 브런치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건축가들이 좋아하는 건축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축이 같기 쉽지 않다고. 이 건물을 마주하며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이 작업을 한 건축가들은 런던 출신의 카루소 세인트 존스(Caruso St. Johns)이다. 두 명의 영국인이 이끄는 이 사무실은 런던에서 출발해 스위스 취리히에 굵직한 공모전이 당선되며 취리히에 두 번째 사무실도 연, 현재 건축가들이 가장 열광하는 사무실 중 하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이라는 나라의 출신 건축가들이 현대시대에 보기 힘든, ‘한 땀 한 땀’ 땀 흘려 만든 것 같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 작업을 많이 한다. 왠지 찍어낸 듯하지 않은 유일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에 사는 건축가들은 열광한다.

위 사진의 어깨너머의 교회처럼 이 건물도 조적식 입면이다. 하나씩 쌓아 올린 듯한 벽돌 입면은 브레멘 구도심이라는 건물의 위치를 고려하면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선택이다. 대신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곡선도 만들고 아치도 만들고 요철도 만들었다. 기존 이웃 건물들과 연계성을 가지지만 지루해지지 않으려 노력한 점이 멋있다.


이 건물의 용도는 은행이다. 분명 건물 내부에 이 용도와 관련된 특별한 구역이나 장치들이 있겠지만 결국 대부분은 사무실이다.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작품이 초기 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완공된 걸 보면 ‘은행’이라는, ‘사무실’이라는 건물에 대해 이곳 사람들이 가진 꽤나 뚜렷한 그림이 있다. 분명 현재 시점에 만들어졌지만 시간의 흔적이 묻은 주변과 어울리는 느낌. 구도심이라는 장소성이 진하게 묻어난 사무실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여전히 반대 여론은 있다. 우연히 TV에서 이 건물이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국영방송 같은 채널이었는데, 길거리 인터뷰 내용이 압권이었다. 프로그램 의도에 맞춰 색깔에 맞춤 인터뷰만 골랐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여전히 길에서 마주칠만한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분의 날카로운 말들이 잊히지 않는다. ‘또 똑같은 것들, 베끼고 베끼는 거 아닌가요? 왜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뭐 토론을 하자면 밤새서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다.



슈타트하우스 반호프슈트라쎄(Stadthaus Bahnhofstraße)

현재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브레멘에 몇 번의 작업을 했다. 하나는 중앙역 바로 앞에 공룡과 같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상업건물(참고로 이때는 사람들이 피켓까지 들고 현장에 나와 시위를 했다고 한다. ‘물러가라!’ 뭐 이런 식의 시위 말이다.), 또 하나는 구 도심의 은행 건물 증축, 그리고 이 건물. 개인적으로 그나마 이 건물이 전체 크기도 그렇고 주변과의 어울림이 고개를 끄떡일만해서 들러봤다.


길을 걷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요새’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건물은 그냥 ‘사무실’이다. 층층마다 월세를 주는, 평범한 용도의 건물이다. 꽤나 값비싼 자연석의 옷을 입은 이 건물은, 좀 비싸게 지어도 좀 비싸게 월세를 주자는, 요새 지어지는 많은 신축 건물 중의 하나다. 그러다 보니 근사하게 차려입은 자연석의 옷 외에는 딱히 크게 특별할 것이 없다. 주변 건물과 특별히 연관되는 점은 어깨의 높이를 나란히 맞춘 점 외에는 없다. 왜 이 색깔의, 이런 무늬의 자연석을 골랐을까 식의 고민은 불필요해 보인다. 여러 날을 고민해서 고른 재료이겠지만 구도심의 벽돌처럼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그래서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 도시적 이유보다, 건축가 개인의 성향과 건축주의 성향이 결합된 결과물로 보는 것이 더 맞다. 그러나 분명, 탄탄한 기본기를 잘 지키긴 했다. 자연석과 창문틀이 만나는 방법, 자연석의 줄눈을 넣은 방법, 입면의 요철을 통해 멋진 그림자를 드리워 밋밋한 거리의 입면에 독특하게 보일 수 있도록 의도한 방법 들 말이다. 이렇듯, 여느 도시의 여느 건물이나 장점이나 단점, 멋짐이나 후짐은 모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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