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매일매일 쏟아지는 건축 블로그와 잡지, 책들을 통해 접하는 ‘오늘 새로 신축된 건물들’은 항상 새롭다. 사람이 제각각 모두 다르듯 세상에 같은 장소는 없으며 같은 조건으로 지어지는 건물도 없으므로 같은 건물은 세상에 없어서 더욱 그렇다. 비슷한 컨셉으로 접근하지만 결국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아주 다이내믹한 세상에 살고 있는 탓이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고 새롭지 않지만 전혀 새로운 컨셉의 건물인 함부르크 필하모니의 공식적 기록을 찾아보니 계획 기간은 2001-2006년이고 완공은 2016년 11월로 되어있다. 아마 최초 계획단계부터 계산을 한다면 아마도 더욱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작업일 것이다. 베를린의 신공항, 슈투트가르트의 중앙역과 함께 독일 3대 가장 큰 골칫덩어리 프로젝트로 치부받던 함부르크의 필하모니가 드디어 완공되며 그 불명예를 벗어났다. 완공 직후부터, 사실 공사 기간에도 이 프로젝트와 큰 관심으로 인해 사진자료나 기사들은 꽤 많았다. 지난 2011년에 잠깐 들렀을 때는 이제 개막을 앞둔 것처럼 광고도 하고 현수막도 걸었었다. 그렇게 완공을 몇 번이나 미루고 미뤄 결국 5년여의 시간이 더 걸려 완공된 셈이다.
건축가인 헤르족 드뮤론(Herzog & de Mueron)은 스위스 바젤의 터줏대감으로 스위스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설계 사무실이다. 벌써 설립만 해도 1978년으로 전 세계 6곳의 사무실에 420여 명의 직원이 일한다니, 규모를 상상할만하다. 스위스는 물론 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학교에서 강연 활동도 활발해했었던 관계로, 아주 자주 스위스에서 현재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력에 이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들의 영향력이 조금은 상상이 간다.
2006년이었다. 어찌어찌하여 운 좋게 베니스 비엔날레에 갔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함부르크 필하모니에 관한 이들의 ‘하소연’을 접했다. 신문에 기고된 내용이며 언론에 소개된 여러 가지 의견을 보여주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소개하는 식이었는데, 분명 부정적인 상황이었다.
함부르크 필하모니는 기존에 있던 적벽돌의 건물 위에 반짝반짝 빛나고 바다 물결처럼 찬란하게 일렁이는 콘서트홀을 만드는 것이다. 이곳이 공업지역이었음을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적벽돌 건물은 외관상으로 큰 변화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사실 내부는 모두 다시 새롭게 짓는 셈인 것이다. (아마도 공모전과 프로젝트 초기에는 있는 구조도 그대로 사용하고 최대한 많이 보존하는 식으로 방향이 잡혔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비엔날레에서 만났던 시점은, 기존 건물의 구조가 생각보다 별로 쓸만하지 않아서 기존 구조를 모두 새로 보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이다. 그러니 공사비도, 공사기간도 당초 계획보다 많이 추가되고 늘어질 것이 기정 사실화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니, 언론이 가만히 있을까.
서울의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다행히 짓는다 안 짓는다의 논의 단계에서 결정이 났으니 다행이지, 그 건물을 짓는 도중에, 이미 수년에 걸쳐 공사를 하던 시점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정말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것임을 좀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회사 내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겠으나 비엔날레에 내걸린, 작정한 듯한 헤르족 드뮤론의 ‘내부 결론’은 이 프로젝트가 잘못되고 건축주인 함부르크시와 소송에 휩싸일 경우, 그냥 사무실이 문 닫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 건축설계사무실의 폐업이 아니라 상징적인 사무실이 사라진다는 것과 바젤시 입장에서는 꽤나 큰 지자체 기업 하나를 잃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지나간 시간 속에서 아쉽게도 이런 소송 과정에서 없어져간 사무실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으니, ‘아, 저들도 저렇게 없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건 당시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뭐 물론, 그 정도 규모의 사무실이 사라는 게 모노폴리처럼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와중에 시간이 흘러 흘러 기억에서 잊힐 때쯤 한 번씩 현장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그로 인해 이 프로젝트가 무산되지 않았음을, 그 사무실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게 됐다.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보여주듯 굵직굵직한 새로운 작업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결국, 이 프로젝트는 이렇게 완공이 됐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상관관계는 언제나 그렇듯 꽤 복잡하다. 필하모니라는 상징적 장소를 가지고 싶은 함부르크 시와 부적한 금전 사정을 메꿔줄 주인공이자 최대한의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 이들 사이에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건축가, 그리고 이곳을 여러 형태로 즐기고 사용할 시민들. 이들 간의 상호관계를 한 번 씩만 그려도 벌써 복잡한 관계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그 복잡한 인과관계에 의해 생성된 멋진 테라스를 구경하러 간 것이었다. (뭐 물론 제대로 즐기려면 멋진 콘서트부터 봐야 했으나 예매 과정부터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테라스에 담긴 도시의 풍경을 눈으로 담아오는 것도 좋았다. 사진으로 전달되지 않는 강한 바닷바람과 소금 냄새 등이 벌써 건물의 장소성을 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이 건물 내부에는 놀랍게도 거주용 공간도 있다. 건물의 중간에 어마어마한 공연장을 둘러싸고 호텔이며, 집이며, 쇼핑몰이며, 주차장이며, 흡사 작은 도시와도 같은 기능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 어마어마한 데시벨의 공연장의 소리를 처리했다는 뜻인데 이것만으로도 벌써 논문 거리다.
필하모니의 위치는 함부르크 시의 구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바닷가에 바짝 붙어있는 이 새로운 명소는 시 전체를 굽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 것이다. 기념품 가게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구매를 기다리고 있는 제품들만 봐도 다양한 현태로 사람들의 삶으로 침투할 준비를 끝마친 것 같다. 언젠가 함부르크 필하모니에서 상임지휘자의 공연을 보고, 바로 옆의 호텔에서 자고, 이 기념품들을 잔뜩 사갈 날을 아주아주 기대한다.